후한 시대의 논객 왕충은 ‘논형(論衡)’(동아일보사, 2016)에서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백 세 수명이 정상 수명이다. 그러나 백 세까지 살 수 없는 사람의 수명 또한 수명이다. 하늘이 수명의 장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받은 기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왕충은 인간의 정상 수명은 백 세까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나이까지 살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하늘로부터 받은 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그 행동이 지나치게 넘치게 되면 수명이 단축된다고 말한다.
‘상서(尙書)’ 요전(堯典)에 따르면 중국 고대의 태평성대를 살았던 요임금은 98세까지 살았고, 순임금은 백 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주나라 문왕은 97세까지 살았고, 무왕은 9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성인들은 조화로운 기운으로 살았기 때문에 정상 수명까지 살았다. 백 살까지 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단명한 사람이고,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죽는 사람은 요절하였다고 말한다. 인간의 수명이 백 세까지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만큼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일까? 태평한 시대에는 음기와 양기가 조화롭기 때문에 인간은 백 세까지 살 수 있었다. 그 조화로움이 깨어지면 인간의 수명은 정상 수명을 살지 못하게 된다.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는 요인은 자연의 생체 리듬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이다. 이런 자연의 순리가 깨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주어진 백 세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텃밭에 심어둔 깨가 가로등 불빛 때문에 씨앗을 맺지 못하게 되고, 채소들은 잠을 자야하는 시간에 잠을 잘 수 없어서 꼬질꼬질한 채로 시들어간다. 식물들도 낮과 밤의 질서에 따라 잠을 자고 깨어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로등 불빛 하나만으로도 식물들의 피해가 심각한데, 밤을 낮처럼 밝히고 살아가는 인간이 정상 수명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밤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낮처럼 환하다. 그 불빛으로 사람들은 밤을 낮으로 삼아서 활동을 연장한다.
인간이 정상 수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생체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 발로 스스로 걷지 못하고, 제 힘으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비정상 수명까지 포함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옛날보다 길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끊임없이 파괴하면서도 그 자연 때문에 인간의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으니 과연 그 잘못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인가? 수명이 백 세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거부하면서 일어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람은 잠을 많이 자는 것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조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연의 생체 리듬에 맞게 잠을 자야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갈 때 건강한 백 세의 삶을 살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온갖 풍문이 난무하고, 그 풍문의 진위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이 쓸데없는 곳에 정신을 팔다 보니 몸과 정신의 기운을 지나치게 낭비하게 된다. 열린 귀라고 해서 들리는 말에 무조건 현혹되고, 보이는 눈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한다면 우리 몸의 기운은 그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많은 것을 듣지 않고 고요함에 자신을 놓아두면 정신은 더없이 맑아지고 수명은 길어진다. 늙으면 귀가 어둡고 눈이 침침한 것은 많이 듣지 말고 많이 보지 말라는 자연의 엄명(嚴命)이다. 그 엄명을 천명(天命)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정상 수명을 살 수 있다.
먼동이 차오르는 새벽의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연이 주는 생체 리듬을 알 까닭이 있겠는가? 주변의 풍성한 자연이 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모르면서 보이는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연이 주는 무궁한 가치를 알 까닭이 있겠는가? 보이는 가치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보니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잊게 되고, 그 보이지 않는 가치가 백 세 수명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가치를 버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기 위해 낙향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 잠을 자면서 고독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고, 아침이 밝았으니 잠에서 깨어나라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의 소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인간이 정상 수명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생체 리듬을 찾는 데 있다. 자연 생체 리듬을 회복하는 길이야말로 인간 생명의 근원을 발견하는 의학 인문학의 출발이 아닐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