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 전에 도착해 그곳 주변을 둘러보는 편이다.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던 순간이나 사물의 역사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곳이 낯선 곳이면 더욱 좋다.
걷는다. 차츰 멀어져가는 생각, 점점 몰려오는 생각과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사방으로 흩어지는 생각을 하며 걷고 또 걷는다. 별자리를 옮겨다니며 달무리에 닿기까지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의 소실점을 향해 걷는다. 봄이다. 숨이 멎을 듯 난분분 떨어져 휘몰아치는 벚꽃잎을 온몸에 새긴 후에 녹색의 눈동자와 같이 반짝이는 나뭇잎 그늘을 지난다. 빨갛게 노랗게 달구어진 잎들이 날아와 보도블록 위로 깔리는 그 위를 밟는다. 그리고 겨울 눈 속에 파묻힌 낙엽을 골라내어 입김을 불어넣으며 나는 걷는다. 때론 고양이와 노닐다 저 멀리 다리 위로 팔랑팔랑 날아가는 게 나비든지 잎사귀든지 그 뒤를 무작정 따라 나선다.
기획물 ‘부산을 보행친화도시로’는 광범위하고도 세밀했다. 부산의 장소가 갖는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되새기고 장소명의 어원까지 알려준다. 구석구석 땀이 밴 기사였다. 대동여지도가 떠올랐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착각할 정도다. 두 번째 연재에서 ‘하야리아 미군부대(시민공원)’로 알려진 ‘하야리아’는 원래 인디언 말이고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야기 공작소- 도란도란’에 등장하는 그 옛날의 이섭교와 세병교를 건너 홰바지, 토곡, 대조리를 지나 물만골에 도착한다.
때마침 부산 시민공원의 숲 조성을 위해 기업들의 통 큰 기부가 있었다는 지난 1월 20일 자 기사를 접했다. 반가웠다. 그늘이 없다는 것은 나무들이 집중되어 있지 않아 숲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시민공원이 생긴 지가 벌써 몇 년인가. 아직도 맨땅이다. 사막 길인가. 방문객의 발길도 점점 줄어든다는 국제신문의 보도도 있었다. 송상현광장도 아쉽다. 매우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부자연스럽고 역시 그늘이 없다. 하지만 숲을 조성한다는 것이 나무만 심는다고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수종에 따른 토양과 토질의 문제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그런데도 반드시 숲길이 조성돼야 한다. 보행도시 모드는 생태도시로 좌표 설정을 해야 온전히 작동한다는 깨우침은 당연하다. 국제신문이 공모를 통해 명명했다는 갈맷길도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지적한다.
국립해양박물관 도서관엘 한두 번씩 간다. 천장 깊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기 전에 건물을 둘러본다. 박물관 3층 수족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다거북과 상어 그 외 물고기들의 느릿한 움직임은 충분히 환상적이다. 아름답다. 몇 년 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세계해양도서 전시회였다. 신기했다. 해양문화가 그토록 다양하고 무궁무진할줄 몰랐다. 이 박물관의 원장이 쓴 ‘주강현의 세계의 해양박물관’ 기획기사는 해외 유수한 해양박물관을 소개한다. 해양 전반에 대한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해양발전에 도움 되는 의견들을 제시한다. 부산 영도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을 제1관 영도관, 제2관 북항관 그리고 인근 울산 진해 마산 통영 경주 포항 등지로 확산시켜 융·복합 네트워크로의 운영이라는 확대된 의미를 내놓아 이목을 끈다.
또 다른 기획물 ‘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는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글이다. 소설과 시를 쓸 수도 있겠고 그림은 물론 연극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로드 짐’, 윌리엄 터너가 그린 항구의 풍경화들, 비제의 오페라 ‘진주 조개잡이’가 떠오른다. 1920년대에 이미 동북아 최대 도시로 떠오른 상하이의 발전사와 일본에 사는 재일제주인의 노력으로 바다를 건너온 감귤 묘목이 제주도의 감귤 생산량을 늘렸다는 이야기들. 인천시 외국인 묘지에 안장된 글로버 베네트의 묘지, 이곳과 관련해 오페라 ‘나비부인’이 탄생했다는 사연들이 흥미로웠다. 초반엔 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이 들었는데 점점 탄력이 붙어 흥미를 더한다. 곧 절영해안 산책길에 들어설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