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기업에서 불기 시작한 혁신 바람이 21세기 한국 내 공공영역까지 치고 들어왔다. 이제 공기업도 성과(수익)를 내야 한다. 못 내면 죽는다. 이 시대 생존의 키워드는 혁신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혁신의 제1 쟁점은 창조다. 그런데 혁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혁신의 제2 쟁점 때문이다. 바로 파괴다. 기존 질서와 관행을 파괴할 수 있느냐이다. 혁신의 본질은 바로 파괴에 있다. 파괴를 수반하지 않는 혁신은 그래서 혁신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 하던 것을 ‘더 열심히’ 해서 얻은 성과는 혁신일까? 아니다.
기억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주야장천 떠들었던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그런데 이 개념이 국정 운영의 근간으로 등장했음에도 그 많은 고위관료는 물론 학자, 평론가들조차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뭘 어쩌자는 것인지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 뜻도 이유도 모르는 단어를 무슨 마법의 지팡이라도 되는 양 열심히 떠들기만 하다 끝나버렸다. 블랙코미디였다. 당연하다. 설명 못 하는 게. ‘창조’를 주장하려면 ‘파괴’를 설파해야 하는데 극우 성향의 속 좁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국정 기조에 파괴의 개념을 포함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수 학자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찰스 랜드리에서 마사유키 사사키, 리처드 플로리다로 이어지는 창조도시론자들의 개념에서 차용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창조도시론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유로움, 다양성, 관용이다. 박 정부의 국정기조와는 정면충돌하는 개념들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플로리다의 ‘창조적 계급’이다. 창조계급론은 국가경영 및 도시경영에 광범위한 영감을 준 개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난민 등 ‘나와 다른 사람’ 즉 이방인과 특히 게이에 대한 포용력을 강조한다. 이들에 대한 태도가 도시의 미래 발전 가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왜 어떤 지역은 번영하고 침체하는가를 연구하던 그는 하이테크놀로지의 집적도가 높은 도시들의 순위를 가리던 중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하이테크 지수가 높은 도시일수록 게이가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과 2000년 진행된 각각의 조사에서 샌프란시스코, LA 등 ‘하이테크 톱 텐’에 선정된 도시들 중 무려 절반인 다섯 도시가 ‘게이 지수 톱 텐’ 도시에 동시에 선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게이가 많이 사는 도시가 하이테크로 발전할까. 게이가 특별히 똑똑해서? 아니다. 그곳엔 ‘창조적 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차별받는 집단인 게이공동체를 받아들일 정도라면 모든 사람을 환영할 것이고, 당연히 성 인종 장애 구분 없이 다양한 인재가 모일 것이다. 바로 창조적 계급이다. 엔지니어, 과학자, 교수, 프로그래머,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등 순수 창조인뿐 아니라 회계, 법률, 금융, 의료 등 지식집약형 산업의 창조적 전문가까지 함께 이웃이 된다. 게이 지수는 그래서 도시의 관용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지표일 뿐 아니라 하이테크산업 성장의 지표로 여겨지는 것이다.
특히 게이 집단은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신묘한 능력을 갖고 있다. 거주지를 선택할 때 교육과 안전을 중시하는 이성애자와 달리 게이들은 지역의 다양성과 포용성은 물론 레스토랑, 상점, 대중교통 등 편의시설과 나이트라이프에 관심을 가진다. 이들의 정착이 낙후된 도시지역 재생의 전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연구는 동성 가구가 많을수록 지역의 젠트리화(고급주택화) 가능성이 높고, 지역 내 게이 거주 비율이 부동산 가치 상승 등 지역경제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가장 게이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는 실리콘밸리 등 하이테크 집적도가 가장 높고,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선도할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GDP가 높은 주다. 플로리다는 “번영하는 지역엔 번영하는 이유가 있고 쇠락하는 지역은 쇠락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째, 부산은 번영하는 도시인가, 쇠락하는 도시인가. 둘째,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은 원래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갖게 된 지역의 보수적 성향이 배타성을 띠게 되면서 도시 전체가 활력을 잃어버렸다. 부산 추락의 시기는 바로 그 시기였다. 지금 부산은 젊은이가 탈출하는 노인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부산이 다시 전성기를 되찾으려면 다양성과 관용이 넘치는 창조도시, 포용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가 어렵고 인구가 줄어드는 부산에 갑자기 기업이 찾아오고 일자리가 생겨날 리 없다. “지역을 찾아 인재가 모이고, 인재를 찾아 일자리가 따라온다”는 플로리다의 주장처럼 부산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이제 창조를 위한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를 파괴해야 한다. 부산의 혁신, 당신은 준비되었는가.
부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