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익숙한 것도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새삼스럽다. 한국인이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여행하는 일정을 따라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래서 재미있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말고 본인들에게 신기한 다른 것을 종종 발견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갈빗집에 가서는 입구에 설치된 자동문이라든지 테이블마다 달린 색다른 환풍기, 고기나 면을 자르는데 사용하라고 제공되는 가위 같은 것을 보고 ‘오, 바로 이게 한국이야’ 하는 식이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호기심 어린 발견은 한편으로 진지하면서 유쾌하고 그걸 보면서 우리는 왜 이런 식으로 살게 되었는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본 짧은 통찰이 새삼 충격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예전에 ‘현대자동차 푸상무’라는 책을 읽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프랭크 에이렌스가 현대자동차 글로벌 홍보담당으로 와서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앞부분에 본인이 겪은 한국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5000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에 살고 있고, 두 번째로 큰 도시의 인구는 350만 명에 불과해 어떻게 보면 한국은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에 가깝다’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와 인프라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도시국가’처럼 보일 정도라니. 부산에서 나고 자라 이 도시의 존재감을 체감하고 있는 부산시민으로서는 무척 허탈한 일이다.
지역민의 박탈감이 어쩌면 임계에 달했다고 종종 느낀다. 특히 얼마 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에 대해 수도권과 지역의 목소리가 극명하게 갈라졌을 때 더욱 그랬다. 그래서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핵심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현재로서는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중앙대 마강래(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도시살생부’에서 자치분권, 특히 재정분권을 하면 지자체의 기초체력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돼 가뜩이나 자생력이 없는 지자체는 무너지고 말 거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자치분권 이전에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고, 지방에서 똘똘한 대도시권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영남권에서는 부산을 중심으로 부울경 생활권을 만드는 게 답이라는 거다.
국제신문도 이런 고민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제2의 도시 위상, 관문공항에 달렸다’ ‘부산의 희망벨트’에서는 부산 경제의 활로를 찾는 고민이 엿보이고 ‘보행친화도시’ ‘치매 보듬는 사회’에서는 시민의 삶의 질에 대한 고려를 읽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두 부류의 기획이 ‘개발’과 ‘복지’로 동떨어져 있다는 이질감이 있었다.
최근에는 ‘부산을 적정도시로’라는 기획을 들고 나왔다. 첫 편에서는 도시계획상 목표인구와 실제인구의 미스매치를 짚었다. 부산시는 목표인구 410만 명을 기준으로 공간계획을 해왔지만 실제 부산 인구는 350만 명에서 점차 줄어가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고지대와 해안가에 무리하게 주택을 늘려왔다면 지금부터는 오히려 과잉개발된 부분을 정리하고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도시를 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개발과 복지, 두 퍼즐이 맞춰지는 듯 반가웠다. 시의회와 공동기획한 기사라니 지면의 제안에 그치지 않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듯해 더욱 기대가 크다. 향후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꼼꼼히 읽어보려 한다.
어두운 전망을 많이 얘기했지만 몇 년 사이 부산이 무척 ‘힙’해졌다는 것도 동시에 느낀다. 광안리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할 때면 매일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들을 만난다. 바다가 있고, 일제강점기 모습을 간직한 원도심과 첨단미래도시를 연상케하는 풍경이 공존하는 도시. 익히 알려진 부산사람의 기질과 저력,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도시를 형성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곳. 어쩌면 부산이 리처드 플로리다가 말한 관용과 다양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창조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산민언련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