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정체성의 본질적 요소다. 언어로 사물과 세상을 인식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표징이기도 하다. 아무리 섬세한 언어라도 사물과 세상을 완전히 담아내지는 못하는 까닭에서다. 이는 인간 인식과 사유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전하려는 선불교의 언어도단(言語道斷)이나 노장사상의 불언지교(不言之敎)는 그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구도행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동적이고 성스러운 몸부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에는 이런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언어를 자의적, 독단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사물과 세상을 왜곡하는 부정적 면모도 존재하는 게 인간의 역사다. 한반도 분단과 냉전이 낳은 기형적 언어인 ‘빨갱이’가 대표적이다. 빨갱이는 유격대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과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강’에서 연유했다. 파르티잔의 러시아어 발음이 우리말로 빠르찌잔→빨치잔→빨치산으로 변형되다 빨강이란 말과 결합해 빨갱이가 된 것이다. 어원대로라면 빨갱이의 정확한 의미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유격대원’이나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역사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극우세력의 종북몰이에서 보듯, 공산주의 사상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빨갱이라는 배척의 언어로 매도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사에서 빨갱이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지목했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이 거세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빨갱이 장사꾼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비약을 한다”고 비판했다. 모든 ‘빨갱이 장사꾼’이 친일파는 아니겠지만, 다수가 친일파라는 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1949년 친일 청산에 나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구속시킨 뒤 반민특위를 해산한 ‘국회프락치사건’이 그렇고, 1959년 발생한 진보당사건을 비롯해 독재정권 시절의 숱한 간첩조작사건 또한 그러하다.
빨갱이는 대한민국 사회와 시민을 이분법적으로 가르고 재단하는 물신(物神)의 언어다. 그 토대는 분단과 냉전이다. 분단의 벽을 허물고 탈냉전의 상상력을 가동하지 않는 한 그 언어는 건재할 것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