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호기로운 때가 있었기 마련이다. 온 세상을 휘어잡아 보겠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든지 호랑이는 굶어 죽어도 풀을 뜯지 않는다는 식의 패기가 충만한 시기말이다. 사람마다 다를 터지만 대개 20대가 이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가 민태원 선생이 ‘청춘예찬’이란 글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고 쓴 건 아주 지당하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무렵 이른바 ‘기성세대’에 상당한 증오감을 갖고 있었다. 내 눈에는 분명 세상이 잘못 흘러가고 있음에도 “네가 아직 사회를 겪어 보지 않아서 그래”라며 짐짓 나 몰라라 하는 그들이 미웠다. 나는 그 나이에 이르더라도 젊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치기 어린 각오를 하게 된 계기였을 수 있다.
우스꽝스럽게도 그 뒤는 결말이 초라하다. 높은 꿈을 간직하기는 고사하고 어느새 그토록 외면하려 했던 기성세대가 됐다. 젊은이들과 마주 앉으면 “우리 때는 이랬는데 요즘 애들은 도무지…” “세상 탓하지 말고 노력을 하란 말이야, 노력을…”이라는 말을 주저 없이 내뱉는 나이에 이르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규정한 전형적인 ‘꼰대’에 포함된 셈이다. 그래도 스스로를 위안한다. 젊을 때 그런 생각이나마 가졌기에 사회에 큰 폐 끼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는 게 아니겠느냐고. 20대 시절이 고마운 이유다.
20대는 분명 찬란한 시기다. 꿈이 큰 만큼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20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언사가 될 수 없다. 근데 주위의 젊은 친구들은 사회의 이런 시선에 손사래를 친다. 시쳇말로 단군 이래 우리처럼 불행한 세대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죽어라 공부에 내몰린다.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을 졸업해도 미래는 암담하다. 취업은 바늘 구멍에 코끼리 넣기처럼 힘들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5%나 된다. 그 전해에 견줘 0.3%포인트가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실제 구직 연령인 25∼29세의 실업률도 8.8%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시간 내 개선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큰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당분간 청년실업률이 하락할 가능성은 적다고 지적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중소기업(종업원 50명 미만)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55% 수준이며 그 차이도 점점 커지고 있다. 왜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목을 매느냐고 마냥 나무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한술 더 떠 20대를 ‘적폐’로 몰아붙인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과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최근 자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 하락 이유를 거론하며 ‘전 정부의 잘못된 교육’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교육이 20대를 가장 보수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는 페미니즘 운동 강화와 양성 평등 정책이 원인이라는 황당한 분석까지 내놨다. 지난달에는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취직 안 된다며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고 발언한 적도 있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민주당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당 대표 등이 나서 “우리가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뛰쳐나오게 한 위대한 힘은 청년 정신에 있다” “청춘이 절망이나 상실의 동의어가 돼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홍 의원이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박하고 나서면서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됐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 국정 최고 목표라는 민주당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보는 이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20대가 아직 미숙한 존재로 보일 터지만 마냥 어리숙하지는 않다. 반공교육이나 양성 평등정책 때문에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할 세대는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으며 기준에 맞지 않다 싶을 때 가차 없이 할 말을 내뱉는다. 사회발전 시각에서 해석하자면 ‘비겁한 침묵’보다는 훨씬 긍정적 요인이다. 하긴 그만한 결기조차 없다면 피 끓는 청춘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색하다.
따지고 보면 20대는 개인 의지와 관계없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낀 세대다. 노력만 하면 잘될 수 있다는 믿음과 기회 균등·공정의 원칙이 지금 와서 무너지게 된 데 대한 책임은 당연히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최근 여당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도 하락은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런 현실을 뒤로 한 채 20대 비하만을 일삼는다면 어른 자격이 없다. 그들이 무슨 죽을죄를 저질렀길래 함부로 가당찮은 낙인을 찍는가.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