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나온 저서 중 ‘프랑스의 대숙청’이란 게 있다. 지은이는 20년간 파리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주섭일 씨. 2차 세계대전 당시 5년간 독일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가 나치 부역자들을 단죄하는 과정의 전말을 오롯이 담은 내용이다. 요지는 이렇다. 망명 정부의 지도자 샤를 드골을 중심으로 독일 지배체제에 대한 과거 청산을 투명하고 가차 없이 진행함으로써 민족반역자들을 뿌리 뽑고 새로운 프랑스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다.
독일 침공에 굴복한 프랑스의 페텡 정부는 나치의 꼭두각시와 다름 없었다. 15만여 프랑스인이 나치에 총살당하고, 100만여 명이 나치 군수공장 혹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을 방치하거나 거들었다. 1944년 8월 해방 후 귀국한 드골은 즉각 ‘정의의 법정’을 세우고 반역세력 단죄작업에 들어갔다. 그에 따라 99만여 명의 나치 협력자가 감옥에 갇혔다. 사형선고된 6700여 명 중 760명이 집행됐고 2700여 명은 종신 강제노동형, 3만6700여 명은 징역형 등의 선고를 받았다.
반면 35년간이나 일제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꾸려졌지만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특위가 결국 해산됨으로써 친일파 단죄는 좌절되고 말았다. 친일세력이 척결되기는커녕 미군정의 필요와 보호 아래 권세를 계속 유지했고, 이는 독립국가의 지배세력으로 다시 복귀시켜 주는 꼴이 됐다. 프랑스의 과거 청산에 비하면 정반대로 흐른 셈이다.
그러니 우리 국민 80% 이상은 ‘친일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게 당연하다. 그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성인 1004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다. 그 이유로 ‘정치인·고위공무원·재벌 등에 친일파 후손이 많아서’라는 의견이 48.3%로 대다수를 이뤘다. 3·1운동 정신 계승방법에 대해서도 친일잔재 청산(29.8%), 역사교과서에 내용 보완(26.2%) 등의 순이었다.
내일은 일제의 식민 지배와 폭압에 항거하고 민족의 독립을 세계 만방에 천명한 3·1운동의 100주년이다. 하지만 친일반민족 행위와 잔재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법에는 공효시효가 있지만 역사에는 공소시효가 없어서다.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청산은 우리가 이뤄야 할 과제다.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