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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칼럼] 조선, 불황만 외치기엔 시간이 없다 /이제명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26 19:36:2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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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물로 가득 찬 미래에 악당들과 싸우는 주인공이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워터월드’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공간적 배경이 바다여서 악당들의 본거지는 녹이 잔뜩 슨 채 바다를 떠다니는 거대한 폐유조선으로 설정돼 있다.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 하나. 선미에 선명하게 각인된 배의 이름. 엑슨발데즈(Exxon Valdez)호.

역사적 진실 하나를 보자. 1989년 3월 24일 자정을 넘긴 무렵, 거대한 유조선 한 척이 좌초사고를 일으켜 24만 배럴이라는 엄청난 양의 기름이 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만에 유출된다. 피해 수준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오염을 일으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포함해 5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배상금 판결이 난 것으로도 유명한 역대급 사고다. 배상액 마련에 도움이 되고자 사고선박을 영화세트로 임대했다고 하지만 문명세계 멸망 후의 악당 본거지 이름을 유사 이래 최대급 해양오염사고 선박 이름과 똑같이 만들어 버린 영화제작자의 의도에 박수. 이 한 장면만으로도 환경오염이 지구멸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암묵적 경고는 충분한 역할을 했겠다 싶다.

유엔 산하에 국제해사기구(IMO)라는 조직이 있다. 대양 항해를 하는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에 대한 모든 것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기구다. 일반인에게 비교적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조선산업 경기 부침(浮沈)의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알고 나면 이 기구의 행보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엑슨발데즈호 원유 유출사고로 가보자. 당시 미국에서는 대재앙에 준하는 해양사고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사회적 여론이 비등했다. IMO는 이를 받아들여 모든 원유운반선의 선체를 이중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선박 사고 시 적재 기름이 선체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에 따라 두 겹으로 선체를 만든 유조선에만 운항자격을 부여하게 된다. 이 때문에 멀쩡한 유조선을 두고도 새로 건조하거나 혹은 개조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해양오염은 최대급이었지만 이 사건 덕택에 조선해양산업체들은 역설적으로 최고의 성장기를 누리게 됐다. IMO가 새 시장을 열어준 것에 다름 아니다.

2000년 IMO는 해양 환경오염 방지를 이유로 선박으로부터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의 배출을 줄이도록 규정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해운산업은 또 긴장하고 있다. 기존의 선박으로는 질소·황산화물 배출 규제 규정에 대응할 수 없기에 이 규정을 만족시키는 새 선박이 필요해서다.
조선산업계는 이 규제를 새 시장이 열리는 기회로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례없는 불황과 신규 시장 형성 사이에서 기술 주도권을 놓고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벙커C유 대신 LNG 같은 친환경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건조가 대안으로 주목받지만 어느 누구도 아직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기름유출 방지 규정과 이중선체유조선, 질소·황산화물 배출규제와 LNG연료추진선. 새 규정을 발효시킬 때 마다 새 시장은 열려 왔고, 이것이 바로 조선산업에 미치는 IMO의 영향력이다.

지구 평균온도가 1도 상승하면 킬리만자로산 정상 만년빙이 사라지고, 2도 상승하면 사람이 더위로 사망할 수도 있다 한다. 지구 온도 상승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과거 수백만 년간 온도 상승폭이 1도에 그친 것을 보면 과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지구온도가 산업혁명 전보다 2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에 이어 IMO가 드디어 역할을 하고 나섰다. 2100년 기준으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배에서 배출되는 양을 규제하는 법률을 명문화시켰고 실행방안을 만들고 있다.

이제 이쯤 되면, 지금부터 또 10여 년 후에는 이산화탄소 저감 때문에 조선산업이 다시 요동치리란 것쯤은 초등학생도 예상할 수 있겠다. 이산화탄소 무배출 선박이 아니면 운항할 수 없으니, 새로운 선박이 등장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지금 세계 주요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산화탄소 무배출 선박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이 시장에서 퍼스트무버가 되기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 때마다 산업의 틀이 바뀌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친환경을 화두로 삼은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음 시대의 모습이 어떠할지 누구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역사는 가야할 길에 대해 이미 해답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산업 불황만 외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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