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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다 중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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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21 20:03:04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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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산업재해(산재) 사망자 수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상황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2016년 산재 사망자 수는 1777명이나 됐다. 산재 사망자는 ‘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로 구분한다. 전자는 969명이고 후자는 808명이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산재 공화국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5개 국가의 산재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의 비율) 평균은 0.3이다. 이는 노동자 1만 명당 산재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0.3명이란 뜻이다. 독일은 0.16, 일본 0.19, 미국도 0.36이다. 한국은 2016년 현재 0.53으로 선진국의 2~3배나 된다.

최근 수년간 한국은 산재 사고사망만인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국제 비교를 보면 여전히 매우 높다. 그 원인을 따져볼 때, 기본적으로 외주화의 확산에 따른 하청 및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가 매우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2016년 산재 사고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의 비중은 42.5%나 된다. 그리고 소규모 사업장인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전체의 72%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6년 산재 사고 사망자 969명 중 301명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했고, 404명은 5~49인 사업장에서 사망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72명이 사망했다. 이것을 사고사망만인율로 따져보면 2016년 전체는 0.53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1.10, 5~49인 사업장은 0.51인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0.22였다. 왜 그렇게 됐을까.

주체별 안전 관리의 권한과 역량에 부합하는 역할과 책임의 할당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원·하청 구조에서 위험이 하청으로 외주화되고 원청의 책임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청은 고용주로서 안전 조치 의무를 져야하고 사고 발생 시 처벌이 집중되지만 안전 관리의 여력이 부족하고 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또 노동자들은 위험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위험 회피 여건이 미흡하고 안전의식 부족으로 작업 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고위험 사업 분야에서 산재 사고가 집중되고 있음에도 산업안전 감독관의 부족 등 제한된 행정력 때문에 감시·감독이 부실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산재 공화국을 초래한 이런 원인에 대응하는 대책을 담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준비에 착수했다.

2018년 12월 11일,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때는 대통령 신년사에서 산재 사망자 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한 지 1년이 다 된 시점이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10월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11월 1일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국회는 입법을 서두르지 않았다. 노동계와 촛불시민의 분노는 한겨울의 추위를 넘어선 투쟁으로 이어졌고 이 법(일명 김용균법)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여론이 거셌다. 결국 국회도 입법에 나섰으나 제1야당이 정치적 이유로 국회 본회의를 거부하자 문 대통령은 제1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조국 민정수석을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토록 지시하면서까지 이 법률의 통과를 요청했다.

2018년 12월 27일, 김용균 씨가 숨진 지 16일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가결됐다. 김용균법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유해성이 높고 단기간에 직업병을 발견하기 어려운 작업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외주화를 금지토록 했다. 수은 카드뮴 납 등 12종의 화학물질을 제조·사용하는 작업에 대해 사내 도급을 금지한 것이다. 둘째, 사업주가 안전 및 보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장소가 기존 22개 위험 장소에서 도급인의 사업장 전체와 도급인이 제공·관리하는 장소로 확대됐다. 셋째, 안전 및 보건 조치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되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같은 죄를 범하면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토록 했다. 넷째, 법률의 적용 대상이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됐다. 앞으로 근로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외에도 배달 종사자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도 김용균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 18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용균 씨 유족을 만나 위로하며 “생명과 안전을 이익보다 중시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은 전부개정으로 인해 틀과 내용이 많이 달라졌지만 정작 김용균 씨가 했던 작업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은 여전히 도급 금지 작업에 해당되지 않는다. 설사 도급이 금지된다 해도 그 일은 원청에서 누군가가 해야 한다.

지난 14일 한화 대전공장 폭발 사고로 20대 청년 2명과 30대 가장이 숨진 데서 보듯이 원청 대기업에서도 산재 사망 사고는 일어난다. 사고 위험의 부담과 책임을 하청에서 원청으로 돌려놓는 데만 그친다면 산재 피해자의 소속만 바뀔 뿐이다. 핵심은 원청이든 하청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안전 관리 수칙을 제도적으로 얼마나 엄격하게 잘 적용하고 준수하느냐에 달렸다.

2020년 1월 16일, 김용균법이 공포된 지 1년이 지나 마침내 시행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 작업을 두고 하는 말인데,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는 세부 내용들은 이들 하위 법령에서 정해진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가장 우선시하는 제도의 확립에 기여하는 그런 디테일이 하위 법령에 최대한 잘 담기도록 해야 한다. 사실, 김용균법이 안전 및 보건 조치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에게 가해질 징역형의 하한을 정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에 직면해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김용균씨 어머니는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산재 사고사망만인율을 현재의 절반인 0.27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OECD 평균인 0.3보다 낮다. 앞으로 김용균법의 보다 철저한 실행이 요구되는 이유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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