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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로저스의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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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된 ‘웰컴 투 동막골’은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6·25전쟁 중 강원도 두메산골 ‘동막골’에서 국군과 북한군, 미군이 우연히 만나 주민들과 짧으나마 평화로운 한때를 보낸다는 영화 내용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등 남북관계엔 훈풍이 불었지만, 북미는 날선 대립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3년 후 북미 정상이 마주 앉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게 됐으니, ‘웰컴 투 동막골’이 양국 화해 모델을 미리 제시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맛깔스러운 대사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에서 북한군인이 동막골 촌장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잘 따르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죽고 죽이는 살벌한 바깥 세상과 달리 이웃끼리 서로 돕고 나눠 먹으며 오손도손 정답게 사는 모습이 별천지처럼 느껴져 던진 질문이다. “뭘 좀 멕이는 거지.” 촌장의 대답이 압권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먹고사는 일,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굳이 말할 나위 없는 당연지사이지만, 부족과 결핍을 벗어난 적 없는 게 인류 역사인지라 언제 들어도 새롭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영화, 이 대사에 공감할 듯하다.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 올인’으로 전환을 선언한 데 이어 사회주의권 개혁·개방 정책의 본보기인 ‘도이머이(쇄신)’를 배우기 위해 베트남 국빈 방문을 추진하는 등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으뜸 과제로 삼고 있어서다. 그가 2011년 집권한 이래 북한 27곳을 세금 면제, 출입국·거주·통신 우대 등 특혜를 주는 경제개발구로 지정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두려는 조짐일까. 김 위원장이 ‘큰손’을 유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주인공이다. 로저스 회장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여 오는 3월 방북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소식통에서 이를 부정하는 얘기도 나와 그의 방북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로저스 회장은 주식 투자 10년 만에 4200%의 수익을 올리고, 월가에서 가장 먼저 중국의 경제적 가치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랬던 그가 “한반도가 통일되고 개방되면 20년간 세상에서 제일 주목받게 될 것”이라며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방북이 주목된다. 미국 자본의 북한 진출만큼 북미관계 개선을 보증하는 확실한 장치가 없어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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