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에 때아닌 플래카드 시위대가 나타났다. 경기도 어느 중소도시의 주민 20여 명이었다. 이들은 자기 지역에 큰 민원이 발생해 난리가 났는데 시의원들이 단체로 14일간 미국 연수를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몰려왔다. 이름만 연수이지 일정 대부분이 관광으로 파악됐다며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공항 시위에도 시의원들은 모른 체하고 비행기에 올라 빈축을 샀다.
이듬해 서울에서는 모 구의회 의장이 의회 해외연수에 자신의 부인과 처제를 데려가 물의를 일으켰다. 또 1994년에는 인천의 시민단체가 직무와 관련 없는 시의원들의 외유에 대해 직무유기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이를 계기로 제도적 규제장치를 마련하라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1997년 경기도의 모 군의회가 단적인 사례다. 연수 명목으로 1인당 수백 만원의 군 예산으로 동남아 4개국을 여행하고 온 것이었다. 게다가 일부는 귀국 때 수천만 원대의 외제 물품을 몰래 들여오다 적발돼 철면피 소리를 들었다.
요즘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연말 관광성 해외연수 중 이들이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추태를 보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 여파로 부산 등 전국 지방의회에서 올해 해외연수를 취소·보류하는 곳이 잇따르고, 행정안전부는 제도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부산시의회는 보류 중이던 ‘시의원 공무 국외활동에 대한 조례안’을 다음 달 재심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례안에 따라 해외연수 심사위원회의 과반수를 민간으로 하고, 위원장도 민간에 넘기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외연수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이 70%에 이른다. 그만큼 불신감이 높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1991년 지방의회가 30년 만에 부활된 이래 해외연수 문제는 거의 해마다 터졌다. 악습처럼 굳어진 모양새다. 말썽이 생긴 후 소나기 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개선책 운운하다 시간이 흐르면 재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는 의원이 ‘자비’로 연수를 가는 것이다. 부담이 되겠지만 비용을 조금씩 적립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해외연수 자체를 없애기는 힘들다고 해도, 기존처럼 지방의원들이 단체로 예산을 받아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직무수행에 꼭 필요한 것만 지원하고, 해외연수는 자비로 가는 게 옳고 취지에도 맞다. 만일 자비를 들여야 한다면 해외연수에 발 벗고 나설 지방의원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