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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우리나라 의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박원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27 19:08:36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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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행했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 기차가 오고 있는데 그냥 두면 철로 공사 인부 몇 명이 사망할 것이고, 제3의 인물이 몸집이 뚱뚱한 다른 행인 한 명을 밀면 인부들이 살 수 있다는 설정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인부는 죄가 없지만, 그의 주장은 제3의 인물이 전혀 무관한 행인의 목숨을 고의로 희생시키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의사 슈바이처 박사, 한국인 최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낸 ‘아시아의 슈바이처’ 이종욱 박사, ‘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이태석 신부처럼 지금까지 동서고금에서 많은 의사가 봉사를 해왔으며 그런 봉사는 많은 이를 살렸다. 지금도 달동네에서 의료봉사를 해 칭송받는 의사가 적지 않다.

이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의 희생과 봉사가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의료인에겐 큰 칭찬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사는 당연히 희생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확대 해석은 현대사회에서 여러 문제점을 나을 수 있다. 의사는 돈을 벌지 말아야 하고, 잠 못 자고 일하는 것도 당연하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심지어 환자단체 회장의 말처럼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을 무서워해서는 의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직종의 몇 명이 헌신적인 봉사를 한다고 해서 그 직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고, 직원이 자기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하는 사장이고, 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일꾼이기도 하다. 봉사만 해서는 가족과 직원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의사는 그렇게 무조건 희생적이고 순종적이어야만 하나.

우리나라는 순종적이지 않아서 이룬 것이 많다. 일제 독립투사들과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 열사도 당대에는 정부에게 귀찮은 데모꾼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당대에는 모를 수 있다. 그들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졌고 열사로 추대됐다.

현재 의료정책은 국민을 위해 의료비를 줄이는 정책이라서 옳은 방향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제천 화재 등 여러 사고를 보면 안전에 대한 경비를 줄이는 것은 위험을 늘리는 것과 같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경비를 줄이려 하면 할수록 치료에 있어서 합병증과 부작용이 는다. 그래서 수술실 공기정화 장치나 스프링클러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고 한다. 정부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말이다. 일전에 운전사 과로로 인한 버스 졸음 추돌 사고로 인명이 희생된 후 정부 돈으로 추돌 방지 장치를 버스에 설치한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료는 어떤가. 메르스가 유행했다고 병상 간격을 더 벌리라는 법을 만들어 병원 수입이 줄어도 보상은 없고, 세월호 사건 이후 모든 병원은 구급차를 자체 구비해야 한다고 강제하여 구급차 대행 회사가 도산했다. 반면 구급차를 거의 쓰지 않는 병원도 구매하게 하여 구급차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

헌법 제36조 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는 90% 이상 민간에 의해 운영된다. 올해 복지부 예산 72조5148억 원 중 보건분야 예산은 11조6097억 원(전체 예산의 2.47%)뿐이며 이마저도 대부분은 민간 의료기관이 아닌 부문에 대한 예산이다.

2017년도 국내 전체 병원의 순수입은 매출의 1.2%라고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했다. 이런 수익으로는 각 의료기관이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유독 의료의 안전은 민간에 맡기고 있다. 이에 의료의 안전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의료의 안전에 대한 의료계의 외침을 귀찮게만 생각해선 안 된다. 이 외침을 한낱 데모로만 생각한다면 헌법을 바꿔야 하지 않나.

박원욱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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