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작은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는 창업한 가게나 점포에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소개했다. 사연이 접수되면 직접 전화를 연결해 내용을 청취자들과 공유하고 디제이가 선곡의 방향을 제시한다. 처음 코너를 시작했을 때 제작진과 나는 주로 음악이 많이 흘러나오는 커피 전문점 등 흔히 예상하는 공간에서 사연을 보내오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코너가 문을 열자 의외로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많은 사연과 문자가 도착했다.
직장인과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미술학원, 사무실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달라는 세무 회계사무실, 첫 전시회를 열게 된 청년미술가,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양조장, 환자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한의원, 첫 수업을 목전에 둔 요가원 등. 얼핏 들으면 이런 곳에서 음악 선곡이 왜 필요한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나의 삶과 일터에 좋은 음악이 함께 하길 원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공간에 적절한 음악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연을 읽으며 고민하다 문득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이사를 위해 가구를 장만하는 일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둘 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더 풍요롭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는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 그렇기에 사연의 청취자들과 마치 그 장소로 함께 이사하며 가구를 하나씩 채워가는 마음으로 사연을 나누었다.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는 대부분의 가구광고 문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 부모님 역시도 가구를 고를 때 ‘때가 덜 타는 것’ ‘파손의 위험에도 견고할 것’들에 더 큰 의미를 두었던 듯하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서 과연 맞았던 것일까. 어쩌면 더 선행되어야 하는 가치가 고려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국내에서도 한때 붐을 일으켰던 북유럽 가구들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디자인의 아이디어가 환경과 공간에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와 덴마크 출신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의자 디자인 중 하나임과 동시에 우리 주위에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의 디자인은 가구 자체가 아닌 사람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그곳의 자연환경과 친밀한 유기적 관계에 큰 중점을 두어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디자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가구가 단순히 멋진 생김새와 고가의 브랜드만으로 인식되는 것은 자칫 정말로 고려되어야 할 것을 놓치는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마치 ‘내 집에 이 의자를 놓기만 한다면 가구를 선전하는 소셜미디어의 사진들처럼 멋지겠지!’라고 생각하는 오류와도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오류 대부분을 그 공간이 그 가구들을 놓기에 다소 모자람이 있어서 또는 가구를 보는 안목이 전문가보다 부족해서라고 탓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삶을 영위하는 공간과 내가 주인공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거나 나와 이 공간을 이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말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생략된 경우가 실제 이유일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나 멋진 모양새에 고가임에도 구매를 결심했던 그 가구들의 출발점 역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 않았던가.
이러한 고려의 시간을 우리의 삶에 조금 더 배분한다면 유명 브랜드의 가구이건 저가의 중고 가구이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이 가장 빛날 때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의 공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손길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음악인가 또 차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가의 선곡 역시 그 공간을 빛나게 해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공간에 맞는 가구를 하나씩 찾아가듯 선곡의 여정 역시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 자체가 어떤 전문가의 선곡보다 더 전문적인 과정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배분된 삶의 시간만큼 분명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음악이 ‘음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음악을 ‘듣는다’라는 말보다 ‘스트리밍하다’라는 말이 더 가까운 시대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것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가.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