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파의 창시자이자 철학자인 슐레겔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 그 자체에 나타난 미(美)는 불완전하고 단편적이며 일관성이 없다. 미는 예술 그 자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랑 속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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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지바고의 LP(왼쪽 사진)와 러시아 민요의 CD표지. |
참다운 음악의 향기는 자신의 체험과 비례하거나 삶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지 마치 입시라도 치르듯 단기간에 작곡가와 곡명을 외우고 CD나 레코드를 광적으로 수집해 얻는 지식이나 과시용은 아닌 듯싶다.
필자는 특정 계절에 듣고 좋았던 음악을 아껴 두었다가 이듬해 그 시기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듣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러나 좋은 음악은 그 곡을 들었을 때의 정감이 가장 멋지게 살아날 때 더 큰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을 들으면 흰 눈 덮힌 북유럽의 울창한 침엽수림과 광활한 대지, 그리고 백야 속에 엷게 빛나는 은빛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역시 이 곡은 겨울에 들어야 제격이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와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일명 겨울날의 하르츠여행)’,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도 이런 류다.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아 작곡가의 곡이나 러시아 민요 등도 겨울에 더욱 진한 감동을 준다. 이 중 러시아 민요는 발랄라이카와 함께할 때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 전통 민속악기를 대표하는 발랄라이카는 굵은 세 줄을 엄지손가락으로 뜯으며 기타처럼 연주하는 삼각형 몸통의 현악기다. 17세기 러시아 민속악기인 ‘둠라’에서 분리돼 개량된 발랄라이카는 농민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 반주악기로 많이 사용됐다. 발랄라이카에 의지해 긴 겨울 고단한 삶을 이겨냈으리라. 그래서인지 ‘볼가강의 뱃노래’ ‘트로이카’ ‘검은 눈동자’ ‘붉은 사라판’ 등 러시아 민요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 있다. 이들 민요와 함께 연주되는 발랄라이카의 트레몰로 선율은 마치 휘몰아치는 눈보라처럼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발랄라이카를 언급할 때 나이 지긋한 분들은 영화 ‘닥터 지바고’를 우선 떠올린다. 주인공인 지바고와 라라와의 사랑의 테마는 잊을 수 없는 명곡으로 기억된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원작소설(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지만 당시 소련 당국의 방해공작으로 수상을 거부하게 됨)을 1965년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화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명작이다.
이 영화에서 프랑스 출신의 영화음악가 모리스 자르의 음악이 돋보인다. 증기기관차가 끝없이 펼쳐진 눈 덮힌 대지를 뚫고 달리는 장면이나 전형적인 러시아 시골농가의 수선화 군락과 자작나무 등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발랄라이카의 애잔한 트레몰로 선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의 세계로 안내한다. 음악칼럼니스트·필하모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