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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거리 통학 /동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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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20 19:26:19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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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교 1등이었다. 초중고 다 그랬다. 졸업할 때까지 줄곧 수석을 했다. 물론, 공부로 그랬단 말은 아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 거리가 1등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6학년 도중에 이사하면서, 중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붙잡는 바람에, 고등학교 가서는 전학 추첨에서 떨어져 집이 가장 먼 학생이 되었다.

진짜로 가장 멀었을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닐까.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건재하신 그분은 전교생 조회시간에 나를 언급하곤 했다. 가장 멀지만 가장 일찍 등교하는 모범생이라고. 새벽밥 매일 해 먹인 어머니는 ‘스텐’ 밥그릇 세트를 장한 어버이상으로 받았다. 정말이다.

얼마나 멀었을까. 얼마나 멀었길래 전교 1등이라고 떠벌릴까.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중구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은 학교 근처에 집이 있었다. 1학년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기울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와 집은 점점 멀어졌다. 급기야는 6학년이 되자 범어사 아랫마을 팔송으로 이사했다. 여동생 둘은 전학했지만 나는 통학했다. 곧 졸업이니 중학교 들어가서 전학하자는 심산이었다.

중학교는 송도중학교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학교였다. 팔송 종점에서 48번 버스를 타고 송도 종점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면 학교가 나왔다. 송도 아랫길에서 송도 윗길로 꼬박 3년을 그랬다. 당연히 전학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붙잡았다. 교장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언급할 정도로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을 어느 학교인들 쉽사리 놓아주겠는가.

고등학교는 대신동 대동고를 다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영주동과 송도, 대신동이 같은 학군이었다. 고교 가서는 그저 그랬다. 전학을 신청하자 붙잡는 척도 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학 대열에 합류했다. 급우들과 작별인사까지 나눴다. 하지만 전학하지 못했다. 전학 희망자는 넘치는데 문이 좁았다. 추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학창시절 나는 참 대단했구나’, 이 글을 쓰다가 불쑥 든 생각이다. 팔송에서 영주동으로, 송도로, 대신동으로! 도시락 둘 담겨 미어터진 책가방 들고 언덕길을 오르던 까까머리 중학생 꼬맹이는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가. 내 평생의 장딴지 근육은 어쩌면 그때 다 생겼으리라. 평생을 지탱할 생활력 역시 그때 다 생겼으리라.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집 가까운 학교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학교 친구가 전혀 없는 동네에 살지 않아도 됐을 테고 한두 시간은 더 잤으리라.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불만이고 불편하던 장거리 통학이 내게는 속살이 되고 근력이 되었다. 보수동 헌책방에서 산 시집을 뒤적거리던 등하교 시간은 나를 시인으로 이끌었으며 눈이 피로하면 내다보던 차창 풍경은 나를 ‘부산을 좀 아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차창 풍경 몇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런 기억이 나를 촉촉하게 적시고 불끈대게 한다. 국제신문 맞은편은 한양프라자가 들어서기 전 연꽃 습지였다. 널따란 습지에서 아롱다롱 연꽃이 하늘거리던 초여름 그 풍경을 어찌 잊을 텐가. 하늘에 닿을 듯 높다란 서면 로터리 부산탑은 부산의 상징이자 높다랗게 되기를 바라던 내 학창시절의 상징이었다.

기억하는 풍경은 또 있다. 복개되기 전의 보수천이며 초량천, 고층건물이 가리기 전의 수정산 능선이며 미세먼지 한 톨 보이지 않던 말간 하늘. 별 생각 없이 봤던 풍경 하나하나는 내 기억의 곳간을 도시락 둘 담은 책가방처럼 미어터지게 한다.

방학이 끝나간다. 졸업해서 부산을 떠나는 학생도 있겠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부산을 떠나기 전에 여기저기 부산을 체험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타고, 또는 걸어서 부산의 동쪽에도 가 보고 서쪽, 남쪽, 북쪽에도 가 보길 바란다.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는 만큼 느끼면서 부산 곳곳에 스며들길 바란다. 지역 사랑이 거기서 나오고 훗날 뒤돌아보는 나이가 됐을 때 지역을 재생하는 상상력이 거기서 나온다. 자, 출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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