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gy Dream, 모두에게 돼지꿈을.” 해마다 이맘때면 잡게 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19’의 서문 첫 문장이다. 책 내용과 별개로 이 말만 떼어놓고 봐도 분명히 기분이 좋아진다. 서문을 쓴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언급했듯, 올해는 올림픽 선거 같은 대형 이벤트가 없는 해다. 경기까지 부진하니,소비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무 이유도 없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돼지가 행운과 재복을 상징하는 동물인 까닭에 어쩐지 소비가 늘고, 사업이 잘되고, 돈도 잘 벌릴 것 같고, 올해 태어난 아이도 튼튼하게 잘 자랄 것 같다.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살아내야 할 서민들에게 용기를 전해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올해 트렌드를 대표하는 주제어로 ‘돼지꿈’을 선정한 것과 관련, ‘황금 돼지해’인 점을 강조하면서 한 집단이 공유하는 ‘마음의 버릇’은 소비에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긍정의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황금 돼지해의 문이 열리고 그새 사흘이 지났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돼지꿈’은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자. 국가 경쟁을 넘어 도시 간 무한경쟁이 대세인 시대, 도시의 꿈을 얘기하는 것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미래 초일류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할 부산의 ‘돼지꿈’을 이룰 수 있는 키워드로 과연 어떤 말이 적당할까? 기자는 ‘플랫폼 도시(Platform City)’를 제안해 본다. 작금의 시대가 명실 공히 ‘플랫폼 전성시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플랫폼은 애초 기차역의 승강장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오늘날 극적으로 진화했다. 톨스토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니쥐니 노브고로드선 기차역 승강장과 같은 전통적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플랫폼은 이제 글로벌 기업 비즈니스의 핵심 개념으로 탈바꿈했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말하는 플랫폼은 기차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기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듯이, 수요(자)와 공급(자)이 쉽게 관계를 맺고 정보와 재화 등 원하는 가치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판’이다. 새로운 경제 생태계인 셈이다. 플랫폼 경제의 효시를 2008년 애플사가 아이폰과 그 운영시스템을 공개한 것에서부터 찾는 전문가가 많다. iOS와 앱스토어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이어서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플레이스토어,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넷플릭스, 우버 택시, 에어비앤비 등도 국경을 초월한 신개념 플랫폼의 ‘총아’들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진화의 연속을 보여주는 신개념 생태계라 할 만하다.
아이폰 등장 이후 10년, 플랫폼은 이제 경제계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계 등 다방면에 걸쳐 확산됐다. 심지어 국가나 정부의 운영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치인들이 앞다퉈 유튜브 플랫폼에 채널을 개설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고시 출신 전 기획재정부 5급 사무관 사례에서 보듯이 이른바 ‘내부고발자’의 등장 방식도 스스로 플랫폼에 오르는 형태로 전환됐다.
도시라고 예외가 아니다. 국내외 주요 도시들이 추구하는 플랫폼 전략은 눈부실 정도다. 국내 도시들 가운데 특히 강력한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는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의 플랫폼 전략 핵심 키워드는 인천공항이다. 이미 2017년에 지역총생산 부문에서 부산을 뛰어 넘어 제2의 도시가 됐고, 인구 측면에서도 수년 내 부산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는 인천의 약진에서 인천공항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수도권에서도 변방으로 치부되던 인천은 2001년 인천공항이 문을 열면서 탈바꿈의 연속이다. 미주 유럽 호주 등 전 세계 어느 곳과도 한 번에 연결되는 초강력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사람과 물자가 넘쳐 흘렀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2018년 12월 20일 인천공항은 제4 활주로 건설을 위한 착공식을 가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확장 공사라는 주장에 반박할 세력도 사람도 없다. 언제나 무사통과다. 한때 “가덕도 신공항이냐, 밀양공항이냐”를 놓고 10년 넘게 지역간 싸움만 벌이다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어중간한 결론을 내고만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문제와는 판이하다. 배후에 도사린 서울이라는 대한민국의 ‘중심부’가 인천을 강력히 지지해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까, 정부가 대를 이어가며 수도권인 인천만 밀어준다고 푸념만 하고 있어야 할까.
3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김해신공항 폐기를 비롯한 도시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물류 플랫폼과 창업 플랫폼 등 다양한 플랫폼의 융합이라는 ‘플랫폼 도시 ’ 전략이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좀 더 깊은 숙고와 시대적 통찰이 수반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돼지꿈’이라도 치밀한 전략과 내실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것처럼, 요란한 구호보다는 한 발 앞서가는 순발력과 실력이야말로 도시 경영에서 갖춰야할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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