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읽으며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03 20:05:32
  •  |  본지 3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새해 첫날 아침에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가 일제히 있었다. 당선작과 심사평, 그리고 당선인의 소감이 게재되었다. 신문마다 활짝 웃고 있는 당선인들의 표정을 지면에 실었다. 풋풋한 신예들이 앞으로 맘껏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펼쳐 보일 시간이 활짝 열린 것이다.
신춘문예 관련 신문 지면을 보면서 나는 잠깐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내 문학청년 시절을 떠올렸다. 여러 날의 밤 동안 수많은 퇴고 과정을 거쳐 완성한 나의 작품을 우편으로 발송하던 때의 설렘이 생각났다. 어느 해에는 신문사로 직접 찾아가 작품을 접수한 적도 있었다. 신춘문예 응모 마감이 대개는 12월 초이고, 당선작 발표는 새해 아침에 이뤄지니까 12월 한 달 내내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선 통보가 12월 20일을 전후해서 개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대체로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기다림은 12월 31일 밤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새해 아침에는 거의 모든 일간지 신문을 사서 당선작들과 심사평을 읽었다. 탈락한 나의 작품이 심사평에 거론될 적엔 그나마 조금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해마다 그러하지만, 올해도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 소감을 읽는 시간은 마음이 들떠 두근거리고 새롭다. 아마도 신예들의 패기와 활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선인들의 직업이나 연령 등은 다양했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도 있었지만, 경찰관으로 복무하고 있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신춘문예에 열네 번 응모해서 최종심에 여덟 번 올랐지만 아쉽게도 다 떨어졌던 사연도 한 당선자에겐 있었다. 모두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그 간절함은 나를 엄숙하게 돌아보게 했다.

“이 당선 소감은 2018년 7월 30일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 미리 썼습니다”라고 밝힌 당선 소감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시인은 사회의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보잘것없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느낍니다. 시인이 연약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저도 미래를 걱정합니다. 20년 후에 임플란트 비용을 어떻게 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감각은 깨끗하게 포장된 안전한 길 위에 있지 않습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안정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는 그는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하면서 계속 시를 쓰겠다는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금전적인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누구도 글 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선뜻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글 쓰는 일은 무엇보다 몹시 외로운 작업이다. 나는 이 당선인이 세상의 후하고 박한 평가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숫타니파타’의 말씀처럼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도 같이” “저 광야에 외로이 걷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쯤 (나의) 당선 소식을 듣고 아픈 배를 움켜쥐며 열심히 쓰고 있을 문창과 학우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약값 대신 술값을 지불하겠다”고 밝힌 소감은 단연 눈에 띄었다. 자신만 먼저 문단에 나오게 되어서 그동안 함께 수학한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대신 술을 한 잔 사겠다는 그 배포가 넉넉하고 커보였다. 또한 그렇게 먼저 당선한 이가 술을 한 잔 사다보면 함께 공부하던 선후배들 가운데는 등단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간곡해져서 결국 멀지 않은 미래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도 할 것이다.

1985년 시 ‘안개’로 신춘문예 당선인이 된 기형도 시인은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의 열쇠”를 쥐게 되었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기형도 시인의 당선 소감은 아주 시적인 문장이었다. “당선 연락을 받는 순간 그 어둡고 길었던 습작시절이 한꺼번에 내 의식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모종의 힘에 떠밀려 나는 복도로 걸어 나가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동지였고 어두웠다. 도시는 흑백사진처럼 펼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이 어지럽게, 그러나 각자 확실한 직선을 그으며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속에는 나도 보였다.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모든 사물이 무겁게 보인다”라고 써 기쁨과 함께 찾아온 비장한 심정을 드러냈다. 마치 그가 이르게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선보일 그의 시 세계를 미리 예감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정진하리라. 聖 카프카, 聖 베케트, 聖 장정일. 그 위대한 삼위일체를 위하여”라고 쓴 장정일 작가의 당선 소감도 단연 세상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나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하지 않았고, 계간 문예지인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이 되었다. ‘문예중앙’은 1977년 창간한 문학잡지로 지금은 재정난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내가 등단한 1994년 당시에는 꽤 오랜 전통을 지닌 문예지였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그때 내가 시상식장에서 어떤 소감을 말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씩 나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 당시의 나를 잠시 만난다. 이발을 짧게 하고, 처음으로 양복을 사서 입은 스물다섯 살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때 내가 가졌던 시인으로서의 초심을 생각한다. 가난했어도 시를 쓰는 일 자체가 빛이요, 생명이었던 그때를 생각한다. 잠을 자지 않고 시를 썼지만 마음만은 누구 못지않게 부자였던 때였다. 쏜 화살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앞길을 가겠다고, 시인으로서의 외길을 의연하게 가겠다고 매섭게 각오하던 때였다.

1968년에 신춘문예 당선인이 된 한 소설가는 “나는 아직 젊고 그리고 고집이라는 무기가 있다”라고 당선 소감을 썼다. 뜨거운 이 당선 소감의 문장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비록 글을 쓰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우리가 당면해 있는 생활의 곤고함을 견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의욕으로 파고 높은 이 현실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벽화 명소 돌산마을(부산 문현동 판자촌) 재개발에…둥지서 내몰린 원주민
  2. 2김해 도심에 NHN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선다
  3. 3수행비서 없애고 셀프 커피…초선들 ‘탈권위’ 앞장
  4. 4이진복·유재중 먼저 시동 건 통합당 부산시장 후보 경쟁
  5. 5마린시티 국내 첫 ‘기립식 차수벽’ 가닥
  6. 6전통산업 쇠퇴, 첨단산업 소외…PK ‘러스트 벨트화(공장지대의 몰락)’ 가속
  7. 7카타르 프로젝트 수주, 조선업 부활 마중물 되나
  8. 8부산지검 부장검사,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
  9. 9사생활 침해 논란에…해운대구 ‘CCTV앱’ 운영 중단
  10. 10“보이스피싱 당한 뒤 실종된 아버지 찾습니다”
  1. 1北 김여정, 남북군사합의 파기 언급 “대북전단 조치 안하면 파기 각오해야”
  2. 2통일부 “대북전단 살포 접경지역 국민생명 위험 초래…중단돼야”
  3. 3‘기본소득’ 논쟁 격화에 한 발 뺀 김종인
  4. 4지역경제 악화 시 정부 선제적 지원 등 ‘활성화 특별법’ 국회 발의
  5. 5김여정 “대북전단 방치땐 군사합의 파기” 정부 “백해무익 행위…방지책 마련 검토”
  6. 6동구, 부산YMCA 시민회와 북항막개발 간담회 개최外
  7. 7위기산업 선제적 정부지원 규정
  8. 8여당 “하늘 두쪽 나도 5일 개원” 야당 “독재 선전 포고하나”
  9. 9수행비서 없애고 셀프 커피…초선들 ‘탈권위’ 앞장
  10. 10이진복·유재중 먼저 시동 건 통합당 부산시장 후보 경쟁
  1. 1연금복권 720 제5회
  2. 2주가지수- 2020년 6월 4일
  3. 3금융·증시 동향
  4. 45년 뒤 도심 하늘에 ‘드론 택시’ 띄운다
  5. 5'이재용 사과' 후속조치..삼성계열사 이사회 아래에 노사자문위 설치
  6. 6부산 감천항 서쪽 해역 오염퇴적물 정화사업 본격화
  7. 7LS 구자홍 등 총수일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
  8. 8전국 양돈농가 방역태세 미비
  9. 9현대차 싼타페 11만1609대 시정조치(리콜)
  10. 10우리 나라 교량·터널 연장 5744㎞…10년 만에 60% 늘었다
  1. 1부산지검 현직 부장검사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2. 2윤산터널내 3중 추돌 사고
  3. 3여행용 가방에 7시간 넘게 갇혔던 9살 초등생 끝내 숨져
  4. 4국민 절반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찬성”
  5. 5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 39명…수도권에 36명
  6. 6검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7. 7주촌면 의료폐기처리시설 사실상 논란 매듭
  8. 8오거돈 성추행 피해자 “사과 받은 적 없다…합의 시도할 시 가만있지 않을 것”
  9. 9북한 황해북도 송림 동북동쪽서 규모 2.5 지진 발생
  10. 10부산지역 여성단체 “오거돈 당장 구속하고 처벌하라” 규탄 목소리
  1. 1독일축구협회, 인종차별 반대 세리머니 지지
  2. 2손흥민 “팀 동료 그리웠다…3주 군사훈련 특별한 경험”
  3. 3‘황희찬 83분’ 잘츠부르크, 리그 재개 첫 경기서 빈 2-0 승
  4. 4KBO, 8월부터 2군에 로봇심판 도입
  5. 5하위 타선도 안 도와주네…식어버린 롯데 방망이
  6. 6ESPN “NC 구창모 주목…5월 활약 미국서도 드문 기록”
  7. 7MLB 구단-노조 연봉 갈등 점입가경
  8. 8메시, 바르셀로나서 1년 더 뛴다
  9. 9세계 1위 고진영, 국내파 독무대 KLPGA 우승컵 들까
  10. 10NBA, 8월 1일 시즌 재개 추진
우리은행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김두관·서병수 진심 인터뷰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울산 경남 당선인 역점 법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포구예찬
진정으로 변해가는 모두의 시간 되길
기고 [전체보기]
국산 애니메이션 방송총량제 유지하라 /김치용
폭염과의 현명한 동행 /김종석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고대사는 가야사? 신라사? /권용휘
더이상 ‘오거돈’ 궁금하지 않다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초선 의원들은 잘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방탄소년단 슈가와 대취타
공연예술 패러다임 바뀐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칼 끝 무뎌진 공정위 /이석주
장관 출신에게 관심을 /정옥재
도청도설 [전체보기]
2차 재난지원금
민주집중제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빈자일등(貧者一燈)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치의 딜레마
광주의 상추튀김과 쌈
사설 [전체보기]
낙동강수계법 개정안 21대 국회선 반드시 처리하라
생활 속 거리두기 한 달…산발적 집단 감염 안심 못한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재난기본소득, 정명(正名) 아니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19와 한국의 중견국 외교
허황된 중국경사론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뒷모습을 그린 화가
권력자 마음을 꿰뚫어 본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경제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코로나가 한국에 준 새로운 기회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또 밥만 먹는 협치?
K방역의 힘 보여주는 건 이제부터다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장미꽃과 하프와 5월
문득 찾아온 토마소 알비노니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체인저
와인의 숙성, 사회의 성숙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홍현주의 ‘소림모옥도’
무명 천재 화가의 화조 민화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