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감내해야 했던 혼돈은 과잉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산물이다. 국제정치에서 국가가 강조되면 반목이 심화되고, 여기에 민족주의까지 곁들이게 되면 그 휘발성은 극에 달한다. 이에 비해, 21세기는 도시의 시대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도시 간 경쟁은 구성원들의 삶을 더욱 낫게 하기 위한 선의적인 것이다. 그만큼 평화적이고 건전한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이기면 그 도시는 자연히 부유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이 그 도시로 유입된다.
영국 잡지 모노클 (Monocle)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25대 도시 순위’를 발표한다. 지난해 6월에 발표된 순위를 훑어보니, 1위를 차지한 독일 뮌헨을 비롯해 일본 도쿄, 교토, 오스트리아 빈, 핀란드 헬싱키, 프랑스 파리, 홍콩, 싱가포르 등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에 없는 유명도시들의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다. 물론 순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 도시의 특징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단연코 생활하기 편한 도시들이다. 시내를 연결하는 공공교통망은 단절 없이 촘촘히 연결돼 이동하기 매우 쉽다. 길을 걸어보면 보도블록 하나 어긋난 것 없어 걷기가 즐겁다. 난개발의 공격적 인상이 아니라 자연과 잘 조화된 평화로운 이미지다. 2위를 차지한 도쿄의 경우, 도시철도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가 그물망처럼 잘 연계되면서 목적지까지 도보거리는 10분을 넘지 않는다. 행정가들의 현미경적 섬세성과 입체적 사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둘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들이 쉽게 모여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도시 분위기가 개방적이다는 느낌의 도시가 많다. 외국인을 비롯한 외부인에 대한 차별적 정서가 없고, 아이디어 실현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의 생태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 16위를 차지한 암스테르담은 시민 절반이 180개국에서 모여든 외국인이고 이미 ‘제2의 실리콘밸리’로 각광받은 지 오래다. 다양성에 대해 관대한 ‘톨레랑스’로 유명하다. 22위로 부상한 후쿠오카시의 경우 국립 규슈대학의 위상이 대단하다. 동 대학이 미국인 기업가로부터 기부를 받아 설치한 ‘기업부’는 기술제공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후쿠오카 아시아도시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2015년 이후 후쿠오카시는 연속해서 개업률 1위 도시라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후쿠오카시는 젊은 인구가 유입되는 유일한 지방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셋째, 독창적인 브랜드 개발과 발신에 성공한 도시들이다. 3위의 오스트리아 빈은 음악의 도시로, 13위의 호주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로 상징된다. 이들 도시는 다른 도시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라 도시가 가진 내재적 특징을 한껏 살려 도시브랜드화를 일구어 내었다. 이들 도시는 도시 이름만 들어도 떠올릴 수 있는 상징물이 있을 정도로 발신력이 강하다.
넷째, 높은 안목으로 기회를 잘 포착해 기획할 줄 알고,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도시들이다. 다카시마 소이치로 후쿠오카시장은 2010년 사상 최연소 시장으로 첫 당선된 이래 ‘스타트업 (창업) 도시’를 선언하고 구체적 전략을 추진한 결과 2014년 중앙정부로부터 ‘글로벌 창업, 고용 창출 특구’로 지정받는 데 성공했다. 특구 지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대규모 규제완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각종 세제우대를 인정받으면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원활한 해외인재 유입을 위해 중앙정부를 집요하게 설득해 ‘스타트업 비자’ 제도를 관철시켜 손쉽게 체류비자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압축도시(컴팩트 도시)’를 표방해 평균 통학·통근 시간 38분대를 실현시켰고, 도시 중앙에 위치한 하카다역과 그 주변을 잘 단장해 기업, 식당, 각종 서비스업종이 밀집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도심에 위치한 후쿠오카 공항은 시내까지 고작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러한 ‘압축도시’ 전략은 고령화시대를 대비하고, 피로도 낮은 도시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고려한 것임은 물론이다.
국제신문은 ‘추락하는 부산 위상’이라는 사설(지난해 12월 24일 자)을 통해 최근 부산의 지역내총생산 (GRDP)이 인천에 추월당한 데 대해 걱정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좋고, 남북철도 연결도 좋고, 등록엑스포 유치도 좋고, 북항 오페라하우스 건설도 좋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경쟁력은 큰 담론이나 구호 또는 공허한 결기보다는 행정가들의 현미경적 섬세성, 창의적 인재를 불러들일 수 있는 역량, 독창적 도시 브랜드의 개발과 발신, 그리고 도시 잠재력을 극대화한 구체적 전략 수립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해에는 부산시가 좀 더 내실 있는 정책을 폄으로써 세계인의 화제에 오르는 멋진 도시 부산이 되면 좋겠다.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