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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보고 ‘금’을 샀다 /정철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30 19:36:0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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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2살 큰아들과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봤다. 1997년 당시 27세였던 나는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짐이기도 했다. 대학 동기들의 슬픈 좌절, 입사 후 불어닥친 구조조정 등 우린 그렇게 1998~99년을 보냈다. 영화를 본 후 아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가는 거야?” 아마도 엔딩 장면이 열린 결말로 끝났기 때문인 것 같다.

내년도 한국경제가 다시 IMF(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벌릴 가능성은 0%라고 말한다. 탄탄한 수출과 튼실한 외환보유고가 바로 그 이유다. 우리가 다시 구제금융을 신청하려면 달러가 고갈돼야 한다. 1996년 우린 OECD 회원국이 됐다고 좋아했지만 그해 23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봤다. ‘전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수출은 엄청나다. 지난 11월까지 무역수지는 82개월 연속 흑자행진이다. 올해 연간 수출은 6000억 달러를 넘고, 전체 무역액도 사상 최대 규모인 1조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외환보유고는 어떤가. IMF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고는 200억~300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비공식적으론 “YS가 금고를 열었더니 30억 달러뿐이더라”라는 후문도 있다. 그런데 현재 외환보유고는 4030억 달러에 달한다. 1997년과 비교할 때 10배 이상, 비공식적으로 100배가 넘는 실탄이다. 이런 상황에서 IMF 구제금융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공포마케팅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조심해선 나쁠 게 없다”는 일부의 지적도 들어볼 만하다. 먼저 수출. 현재 탄탄대로에 올라선 건 맞지만 속내를 보면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반도체 편중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11월 수출총액은 5570억1000만 달러다. 이 중 반도체가 21%에 해당하는 1178억5500만 달러였다.

수출의 5분의 1이 반도체이고,연관효과까지 고려하면 한국경제의 30%를 반도체가 책임졌다. 하지만 문제는 내년 이 반도체 경기가 꺾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부진은 잠깐이고 하반기에는 다시 살아날 거란 주장도 있지만 이미 수출 주력 품목인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또 다른 수출역군인 자동차산업도 부진해 당장 내년도 1분기 수출 지표에 관심이 쏠린다.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도 차분히 생각할 대목이 있다. 외환보유고는 주로 국채나 회사채 등으로 보유한다. 한국은행이 최근 금을 사들였다고 해도 100t 정도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외환보유고는 절대 규모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가치,즉 실질 화폐가치로도 평가해야 한다.

쉽게 말해 1997년 금반지 한 돈은 3만~4만 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20만 원이 족히 나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20년 넘는 동안 화폐(종이돈) 가치는 6, 7배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우린 당시 국민적인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이미 무려 227t의 금을 팔아 치웠다. 따라서 IMF외환위기 대비 10배가 넘는 외환보유고가 안정적인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 낙관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요즘 미국 경제뉴스에선 유독 ‘회사채’ 부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6년 넘게 진행된 저금리 속에 미국 대부분 기업은 무차별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했다.이 돈으로 흥청망청하면서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띄우며 호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금리도 오르고 경기가 꺾이자 낮은 등급의 회사채부터 부실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최근 발행된 미국 하이일드 회사채는 ‘제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1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하이일드 회사채란 신용등급이 BB 이하(정크등급)인 채권으로 위험이 큰 만큼 수익도 좋아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발행이 ‘제로’라는 건 이제 시장도 그 위험성을 직감한 것이다. 혹시 우리 외환보유고에서 혹은 기관투자자들이 미국 회사채에 많이 노출돼 있는지 걱정이 된다.

아들은 영화 속 배우 유아인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아빠,나 금 살래요”라고 한다. 이유를 묻자 “그때도 금을 팔아 빚을 갚았으니 금은 지금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답변이다.

나는 속으로 ‘금 살 돈 있으면 빚부터 갚아야 해’라고생각했지만 “그래, 금반지나 하나 사러 가자”고 답했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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