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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중생이 아프니 보살도 아프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30 18:54:15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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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뭅니다. 올해 우리 사회에선 남북 정상회담 등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정치에선 쟁(爭·다툼)만 무성했을 뿐 화(和·화합)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도자라면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다’는 유마경(維摩經)의 한 대목을 마음에 새겨야 할 터입니다.

올 한 해 살아 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우리가 헤쳐 왔던 아득한 시간의 바다에는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도 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무술년의 마지막 날,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얼굴을 찬찬히 마주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부부가 소주잔이라도 부딪치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내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십시오. 근하신년 !


   
또 한 해가 저뭅니다. 겨울값을 하느라고 날씨가 꽤나 춥습니다. 패딩에 딸린 후드를 덮어쓰고 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종종걸음치는 행인들의 머리 위로 석양이 길게 드리우고 있군요. 일모도원(日暮途遠), 갈 길은 먼데 날이 저물어 버린 거리에 홀로 버려진 나그네의 심정이 되는 때이기도 하지요.

한 해의 마지막 날임을 알리는 탁상 달력의 아라비아 숫자를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한 움큼 움켜쥐었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 버린 후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듯. 올 한 해 도대체 뭘 하고 보냈지 하는 새삼스러운 안타까움에 잠기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모두들 크고 작은 아쉬움을 가슴 밑바닥에 앙금처럼 쌓아두고 있을 테지요.

여러분은 올 한 해 어떠셨습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렇게 묻고 보니 오래전 어느 대통령 후보의 선거구호를 흉내 낸 것 같아 민망합니다만. 굳이 그런 질문을 할 것도 없이 다들 팍팍한 시간을 헤쳐 오느라 힘드셨을 겁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자영업자는 또 그들대로 올 한 해 가계를 꾸려나가고 자식들 키우느라 애들 쓰셨겠지요. 취업이 안 돼 어깨를 늘어뜨린 젊은이들의 가슴도 무거웠을 겁니다.

컴퓨터를 켜 올 한 해 제가 바로 이 지면에 채웠던 50여 개 칼럼의 제목을 훑어봅니다. 언감생심 제 작은 손거울이 우리네 삶의 표정을 제대로 비추었을 거라 믿지는 않지만 제 자신은 우리 사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꼈을까 궁금했던 게지요. 그때그때 시속 따라 쓴 글이어서 깊이나 일관성이 모자라 얼굴이 붉어집니다만. 그래도 가장 자주 썼던 글감은 북핵 협상과 남북 정상회담이었군요. 좀체 풀리지 않는 경제문제가 그 뒤를 이었고요. 최저임금제의 그늘이나 수도권을 휩쓴 부동산 투기 광풍을 다룬 글들도 눈에 띕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를 비판하고 ‘미투운동’으로 불붙은 여성인권에 대한 응원의 글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정점으로 한 적폐 청산도 다뤘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보수 진영의 혁신을 촉구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새로 꾸려진 부산의 지방정부에 대한 당부도 써놓았더군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 말입니다. 마음에는 담아 두었는데도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음주운전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된 윤창호 씨나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야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깔려 숨진 김용균 씨의 죽음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묵은 과제, 어두운 그림자를 까발리기만 한 것 같아 민망했습니다만 기분 좋은 일이 전혀 없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올해 초 호주오픈에서 돌풍을 일으킨 정현 선수의 분투, 전 세계 젊은이들을 홀린(?)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이 그랬습니다. 하고 보면 기성세대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 사람도, 희망을 전해준 사람도 하나 같이 아름다운 청년들이었군요. 아, 올해 초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됐던 ‘소확행(小確幸)’이란 화두도 있었네요.

꼽다 보니 장황해졌습니다만, 어쨌든 제 작은 손거울에 비친 이야기만으로도 올 한 해 우리 사회에선 많은 일이 일어났음을 새삼 깨닫겠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우리에게 2018년이란 족적을 남겨놓고 피안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왕 말 난 김에 장삼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이란 거대한 배를 조타(操舵)하는 분들께도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부터. 지난 한 해 국정을 맡아 동분서주하느라고 애쓰셨습니다. 북핵문제와 남북 화해와 협력에선 꽤 성과도 냈습니다. 하지만 미국 때문이든, 북한 때문이든 하반기에 들어와서 협상이 제자리걸음인 건 다들 아는 일입니다.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 때만 해도 당장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은 한편으론 실망하면서도 이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잘라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는 듯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각자 입장과 전략이 있는 만큼 중재자로서의 한국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겠습니다만, 이제는 차분히 지난 한 해를 복기하면서 내년 초에 열린다는 트럼프-김정은 2차 회담을 비롯해 향후 상황 전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문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건 역시 풀리지 않는 경제문제일 테지요. 야당과 보수언론이 최저임금제를 고리로 한 ‘소득주도 성장론’에 얼마나 십자포화를 퍼부었습니까. 당장 지표로 성과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만 정부가 서툴렀던 대목도 없지 않았음은 솔직히 인정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정책적 정당성은 저도 동의합니다만 경제활동인구의 25%에 이르는 자영업자를 위한 사전 대책이 미흡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겠습니다.

지방선거 전후로 80% 후반을 오르내렸던 지지율이 지금 50% 이하로 내려가 ‘데드크로스’니 뭐니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정치의 요체는 결국 국민들의 등을 데워주고 배를 부르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내년엔 국제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니 걱정이 큽니다. 대통령 자신이 며칠 전 “추격형 경제로는 한계가 있고 새로운 산업혁신이 필요하다”고 고백한 대로 새해에는 실사구시의 경제 정책을 펴야 하겠지요. 지금 민간사찰이니 뭐니 해서 청와대 민정라인부터 시끄럽잖아요? 청와대와 내각의 풀어진 나사를 다시 죄십시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서세요.

자유한국당에게도 한마디. 요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지지율이 조금 반등하니 기분 좋으시나요? ‘우리 당에 계파는 사라졌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친박계’니, ‘비박계’니 물밑싸움이 치열하다면서요? 물의를 빚었던 자당 국회의원 몇 사람 쳐내는 시늉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당신들이 진정으로 혁신에 나섰다고 믿어줄까요? ‘유치원 3법’ 같은 개혁입법은 왜 미적미적합니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정당한 비판과 견제를 넘어 발목잡기에 골몰하거나 자기 혁신 없이 상대편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노리는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글쎄, 그라운드를 어슬렁거리기만 하다가 상대편 자책골 덕에 이기는 축구팀이 그리 흔하던가요? 당장 내년 초에 열릴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를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겠다’고 말로만 뇌지 말고 진짜로 뼈를 깎으세요.

쟁(爭)만 무성했을 뿐 화(和)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 해였습니다. ‘화쟁론(和爭論)’을 주창한 원효선사는 화(和)와 쟁(爭)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설파했지 않습니까. ‘쟁’을 다툼이요, ‘화’를 통합이라고 부른다면, 쟁이 없으면 화도 없다고 역설하며 쟁을 통해 화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 이가 원효였습니다. ‘쟁’을 ‘화’를 위한 진통이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에 빠질 터입니다. 마찬가지로 ‘쟁’만 일으키고 ‘화’를 외면하는 반대세력도 결국 제 무덤을 팔 뿐이겠지요. 여야를 막론하고 지도자라면 ‘중생이 아프니 보살이 아프다’는 유마경(維摩經)의 한 대목을 마음에 새겨야 할 터입니다.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말머리를 돌리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나는 새가 ‘눈 깜짝할 새’라더니, 벌써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징검돌 사이로 급류를 이루는 물살처럼 시간은 또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요. 시간의 물살에 실린 우리네 세상살이의 애환이 저희끼리 두런두런 속삭이며 아득한 망각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 올 한 해 살아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우리가 헤쳐 왔던 아득한 시간의 바다에는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도 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무술년의 마지막 날, 가장들은 조금 일찍 퇴근하셔서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으십시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라도 앞에 놓고 살붙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마주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부드러운 불빛에 떠오르는 그 얼굴이 내년에도 함께 살 비비고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갈 사람들이잖습니까. 부부가 소주잔이라도 부딪치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내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십시오. 세상이란 이름을 가진 개울의 징검다리를 함께 건너는 동시대의 모든 분께 새해인사를 건넵니다. 근하신년!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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