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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박창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24 19:27:2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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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장삼이사 모두가 바쁘다. 경기가 안 좋다는데도 있을 모임은 있고, 할 모임은 한다. 몸도 마음도 쫓긴다. 정작 챙겨야 할 일들은 바쁘다는 핑계 속에 밀쳐진다. 고마운 이, 그리운 이들이 안개처럼 가물거린다. 훌훌 털고 벗어던지고 가야 할 것들이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채 꼬물거린다. 한 해의 끝자락에도 나는 숨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어? 어디로 오르고 있는 거지?

오르막과 내리막은 삶의 오묘한 변주(變奏)다. 오르막길에 우는 사람이 있고, 웃는 사람이 있다. 내리막에 좌절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오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내려오면서 꽃을 보는 사람이 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다.” “내리막의 끝은 또 다른 오르막의 시작이다.” 누가 한 말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멋진 인생 아포리즘이다.

작가 김훈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의 이치를 이렇게 간파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김훈 ‘자전거 여행’ 중)

오르막과 내리막이 길 위에서 ‘비긴다’는 말이 무척 재미있다. 올라간다, 내려간다 일희일비하지 마라, 슬픔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말이겠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의 굴곡을 길 위에서 발견한 것이리라.

삶의 고비나 전환기에서 무시로 만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오르내림’이 된다. 오르내림은 시작과 끝의 반복이다. 중요한 것은 오르내림의 타이밍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 오를 때와 내려갈 때가 있다. 올라가야 할 때 내려오면 사람 구실 못 하고, 내려와야 할 때를 놓치고 눌러앉아 있으면 사람 대접 못 받는다.

이 간단한 사실을 국가적, 지역적 상황에 바로 대입할 수도 있다. 변화와 평화라는 키워드로 국가적 오르막길의 상황을 짚어보면, 먼저 북핵 해결을 고리로 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꼽을 수 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 및 비무장지대의 GP(감시초소) 등 군사시설 부분 철수는 분단사를 새로 쓰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남북한 정상이 백두산 천지까지 닿는 오르막길을 성큼 올라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은 세기적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아직 오르막길을 오르는 단계여서 내리막길이 순탄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국 뉴스채널 CNN은 ‘올해의 좋은 일’ 국제 부문에 우리와 관련한 뉴스로 남북 정상의 종전 합의, 개고기 도축장 폐쇄, 평창 남북 공동입장 등을 선정했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부산의 강고한 보수 아성을 격파한 것도 폭풍 같은 변화였다. 변화의 열망은 지역의 보혁 구도를 한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역동적인 오르막길이 될지, 짧은 내리막길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내리막길에 놓을 수 있는 ‘안 좋은 일’도 많았다. 극심한 부의 양극화와 저출산,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국민연금 폭탄 돌리기, 연이은 안전사고, 청와대 사찰 잡음 등은 내리막길에서 볼 수 있는 징조들이다. 반전의 모멘텀이 필요하다.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지역적으로, 개인적으로 오르내림, 즉 오르막-내리막 상황의 체크 리스트를 작성할 수도 있겠다. 이를 통해 지금, 오늘 무엇에 매달려 있고, 무엇에 흥분하며, 무엇에 낙담하고 절망하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오르내림의 타이밍을 찾는 데엔 ‘자기 걷기’가 최고다. 쉼 없이 변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보폭, 자기 호흡을 유지하라는 얘기다. ‘자기 유랑(流浪)’의 기분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순례라 할까.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이것이다. 삶의 무수한 오르막 내리막 길을 당당히 걷고,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힘은 애오라지 자기 보폭과 호흡에서 나온다는 것. 영화배우 하정우가 일상에서 터득한 평범한 자기 걷기가 이 황망한 연말, 정신없이 사는 우리를 깨운다.

자기 보폭과 거기에 맞는 호흡으로 걸으면서, 어느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누군가의 등을 살짝 밀어줄 수 있다면! 높은 곳에서 낮은 자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뜨듯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추구)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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