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허드슨강 하류의 뉴욕시는 1990년대 초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북서쪽 160㎞ 거리의 캐츠킬 유역을 상수원으로 잡았다. 오염방지를 위해 이 유역 규제권도 받았다. 거기에는 하천 주변 완충지대 조성과 비료 사용금지 등이 포함됐다. 그러자 북쪽 주민들이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주지사의 중재로 협의체가 꾸려져 2년여 논의 끝에 합의를 이뤘다. 뉴욕시가 관련 피해 비용을 변제하고, 하수처리시설 조성과 환경보호 등의 협력 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하는 거였다. 그 자금은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동의한 수도세와 지방채로 충당되었다.
이런 과정은 도시가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자연자본에 투자하는 ‘생태계 서비스 접근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즉 취수원 일대에 오염물질이 차단되도록 토지관리 방식을 바꿈으로써 청정 상수원을 마련한 셈이다. 덕분에 뉴욕의 수돗물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 듀크대 환경대학원의 제임스 샐즈먼 교수가 6년 전 펴낸 ‘식수 혁명’에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강 하류에 위치해 ‘맑은 물’ 확보가 30년 숙원인 부산으로서는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부산은 질 낮은 낙동강 표류수를 상수원으로 쓰는 데다 중·상류 지역의 공단 밀집으로 1991년 페놀 사태 같은 오염사고가 재발하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한강·금강·영산강 수계와 달리 상류에 대규모 상수원 댐이 없어 취수장이 상·하류 전역에 분포한 요인이 크다는 지적도 그렇다. 근래에는 과불화화합물 따위의 미규제 유해물질까지 검출돼 수돗물 불신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광역상수도나 대체 수원 개발 등의 해결방안이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도 이젠 지겹다. 2002년 낙동강 수질 개선과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목적으로 제정된 ‘낙동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만 해도 시행 16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딱지가 붙었다. 게다가 부산은 이 법률에 따라 지난해까지 ‘물 이용 부담금’으로 6900억 원을 납부하고도 식수 불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거의 헛돈을 쓴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법에 따른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도 상·하류 지자체 간 물 관련 분쟁을 조정할 권한조차 없으니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그나마 이 법률을 손질하려고 부산 출신의 김해영·이헌승 두 의원이 지난해 말 잇따라 발의한 개정 법률안은 1년 넘도록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들 개정안의 요지는 낙동강수계의 수질 보호를 위해 수변구역 범위를 대폭 넓히고, 물 이용 부담금으로 신규 취수시설 개발지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낙동강수계관리위 기능을 확대하는 사항도 들어 있다. 중·상류 지역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관리위원회가 상·하류 지자체와의 협의·조정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대구·경북 등의 반대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돌이켜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산에 청정 상수원 확보를 약속했지만 모두 헛방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그런 인상이 짙다.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임에도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다. 환경부가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낙동강 물 문제와 관련해 산업단지 배출 화학물질의 단계별 감시, 취수원 인근 입지 규제 강화 검토 등을 내놨지만 미봉책처럼 들린다. 문 정부가 출범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실망스럽다. ‘물 관리’도 환경부로 일원화했다지만 하천 관리권은 국토부가 쥐고 있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앞으로 지구촌 전쟁은 원유가 아니라 물 때문에 일어날 거라는 전망이다. 원유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지만, 한정된 물은 대체 불가능하고 증식할 수도 없어서다. 더욱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물 부족 및 수질 악화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게 뻔하다. 그런 만큼 주요 하천 등에 대한 물 관리는 국가적 생존의 문제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내년을 물 문제 해결의 원년으로 삼고 사활을 걸겠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보다 이제는 행동과 가시적 성과로 말해야 할 때다. 정부 대책을 조르는 것도 좋지만 상류 지자체들과 실질적인 협의·조정의 틀을 만들고 그것이 실행되도록 적극 나서는 게 절실하다. 오 시장 화법으로 하면, 시민이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없는 도시는 존재 가치가 없으니 말이다.
페놀 사태 10년 뒤인 2001년 6월 낙동강 중·상류 일대를 현장 취재한 기억이 난다. 유량 부족으로 강 곳곳이 마르거나 정체되고 검붉은 폐수와 탁류가 유입돼 흐르는 모습에 놀라고 애가 탔다. 그 후로도 오염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며칠 전 낙동강에 오염물질을 배출한 업체들이 사법당국에 무더기로 적발되어서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는 데 돌파구가 열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