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더 길고 추울 것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두꺼운 옷을 단단히 껴입고 집을 나서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을 피할 재간이 없다. 매서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겨울 거리만큼이나 국내 경기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들어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주요 경제지표와 그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에 지금의 국내경제는 가히 경제한파라 할 만하다.
심각한 청년실업률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청년세대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이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중·장년층의 어깨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만에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던 베이비부머 세대인 그들에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그들은 어릴 적 대물림되는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만 했었고, 낯선 타지에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버티면서 마침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일궈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으로 그 어느 세대보다 자부심이 큰 베이비부머 세대가 인생의 황혼기로 넘어가는 현 시점에 받아든 국가의 성적표는 그러나 초라하기 그지없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낙제점에 가깝다.
다음 세대에게 더 풍족한 삶을 선사하고자 국가와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이다. 자신의 노후 준비는커녕 못 입고 못 쓰면서까지 자식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자녀 세대들은 현재 극심한 청년실업난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취업기회로 실망도 크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긴다는 소확행이란 최근 소비 트렌드는 청년들이 체감하는 삶의 고달픔이 투영된 것만 같아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날 불황과 일자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작금의 장기화된 경기침체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라는 징후와 지표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그들에게 물려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요즘 청년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대적 상황이다. 노력보다는 ‘노오력’이, 열정보다는 ‘열정페이’가 그들에겐 이미 더 익숙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절망을 논할 정도로 한가롭지도 않다. 우리는 이미 이보다 더 큰 위기를 수차례 극복해왔던 경험적 재산이 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고도의 경제 성장을 동반한 국가 번영의 꿈은 90년대 후반 IMF환란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무참히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한민국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이 역시 우리 국민들의 끈질긴 저력이자, 한강의 기적 못지않은 위대한 기적이다.
세계경제규모 11위의 국가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를 책으로만 알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청년들은 이를 실감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가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보다는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제 청년들의 차례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 스스로의 길을 떠나야 할 때이다.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하는 권리와 책임은 우리 청년들에게 있다. 지금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도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워 이겼노라”고 당당하게 ‘영웅담’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청년들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세대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나라 곳간을 털어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구직자를 위해 많은 돈을 쏟아 붓지만 희망과 의지가 없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 많이 든다. 지금은 힘들게 노를 젓더라도 언젠가 도착할 희망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부모세대는 자랑스러운 ‘영웅담’과 함께 과거 희망의 나라를 향해 묵묵히 걸으며 스스로에게 했던 격려를 다시 한번 지금의 청년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새해는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한해가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동의과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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