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고도의 생명체라면, 그것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아무리 우수한 도시설비와 행정 시스템, 재정적 기반, 온갖 볼거리를 갖추었다 해도 정작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체라 할 수 없다. 센텀시티의 마천루를 비추는 휘황찬란한 조명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는 있을지언정, 주민들을 건강하게 살찌울 양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은 그저 건강을 저해하는 비곗살을 찌울 뿐이다.
과열된 개발만능주의에 맞서 이곳저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의 막이 오른 지도 이미 오래이다. 감천문화마을을 위시한 이른바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이미 역사적인 사례가 되었고 최근에 조성된 영도 깡깡이예술마을도 전국적 지명도를 얻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덧 도시재생 사업마저도 토건세력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주민의 창발적 의사보다는 소수 전문가와 공무원, 그리고 건설업자의 입김으로 좌지우지되는 도시재생 사업은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민들이 파편화되어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어낼 힘을 상실한 도시는 민주주의의 장송곡이 울리는 화장터이다.
광주시민회관 리모델링과 합천 영상테마파크 휴게소 등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김광수의 최근 작품인 부천아트벙커B39는 도시재생 사업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한다. 이 시설은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옛 쓰레기소각장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방문객은 쓰레기소각 경로를 그대로 따라 반입실로부터 쓰레기벙커와 소각조 및 재벙커를 거쳐 배기가스처리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초장부터 등장하는 볼거리인 쓰레기벙커는 마치 지옥으로 떨어질 듯 거대하게 곧추선 벽체의 칙칙하고 섬뜩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실로 충격적인 것은 이런 괴물 같은 시설이 바로 주민들의 일상생활 한가운데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이다. 김광수의 공공건축이 남다른 것은 이처럼 우리 삶의 이면에 놓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사실상 관 주도의 공공건축이 배제해온 불온한 노선이다. 권력은 늘 화합과 윤색을 선호하는 법이다.
찬란한 수도권의 그늘진 외곽을 성찰과 기억의 장소로 소생시킨 새로운 공공건축의 사례는 도시재생 사업이 더 이상 지역경제 활성화나 환경미화 차원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향후 부산시가 사람이 살 만한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아무런 물음도 허용되지 않고 아무도 묻지 않는 맹목적인 희망의 도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사라져간 뭇 영혼의 체온이 느껴지는 기억과 소통의 도시가 되어야 마땅하다. 실제로 부산을 구석구석 걸어본다면, 이 도시의 생명력은 도시계획이나 건축물의 수준에 달려있기보다는 천혜의 자연과 그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에서 뿜어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굴곡진 인생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가끔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곳의 기억의 터를 연결하면 부산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동선이 등장한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시작해 중구 영주동 언덕에 오르면 하늘 높이 솟아오른 충혼탑이 보인다. 바로 그 옆에 한국전쟁기의 악명 높은 ‘보도연맹’ 사건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언덕 맞은편에는 민주공원이, 그 들머리에는 4월민주혁명희생자위령탑이 있다. 부산은 민주주의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영주동 언덕 오른편으로 내려와 중부교회를 지나면 곧 보수동 책방골목이 눈앞에 나타난다.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에도 시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줄기차게 꿈꿨다. 이곳에서 가까운 대청로에는 일제 치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으며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던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그곳에서 남포동 방면으로 이동하면 일면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국제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부산역으로 나아가면서 1987년 여름의 뜨거웠던 항쟁의 기억을 떠올린다. 북상하여 범내골 복개천을 지나 서면의 태화쥬디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많은 학생과 직장인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한 이곳은 4·19,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의 기억이 겹친 역사의 현장이다.
서면교차로를 지나 부산시민공원으로 가서 옛 하야리야 부대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전쟁기 가장 큰 규모의 피란민 수용소가 있던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 터를 지나 한센병 환우들이 격리되어 살던 용호동 이기대에 이른다. 강한 바람과 시원스러운 경관에는 아픔의 기억이 서려 있다. 동질성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과 인연을 맺었다. 그들 삶의 흔적이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영감을 제공하는 아름다운 부산의 길을 홀로 그려본다.
부산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