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민주주의의 길을 그리며 /전진성

도시재생 · 공공건축 경제적 잣대론 안 돼…부산 근현대사 자취, 새로운 동선 이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12 19:46:51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도시가 고도의 생명체라면, 그것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아무리 우수한 도시설비와 행정 시스템, 재정적 기반, 온갖 볼거리를 갖추었다 해도 정작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체라 할 수 없다. 센텀시티의 마천루를 비추는 휘황찬란한 조명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는 있을지언정, 주민들을 건강하게 살찌울 양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은 그저 건강을 저해하는 비곗살을 찌울 뿐이다.

과열된 개발만능주의에 맞서 이곳저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의 막이 오른 지도 이미 오래이다. 감천문화마을을 위시한 이른바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이미 역사적인 사례가 되었고 최근에 조성된 영도 깡깡이예술마을도 전국적 지명도를 얻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덧 도시재생 사업마저도 토건세력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주민의 창발적 의사보다는 소수 전문가와 공무원, 그리고 건설업자의 입김으로 좌지우지되는 도시재생 사업은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민들이 파편화되어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어낼 힘을 상실한 도시는 민주주의의 장송곡이 울리는 화장터이다.

광주시민회관 리모델링과 합천 영상테마파크 휴게소 등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김광수의 최근 작품인 부천아트벙커B39는 도시재생 사업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한다. 이 시설은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옛 쓰레기소각장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방문객은 쓰레기소각 경로를 그대로 따라 반입실로부터 쓰레기벙커와 소각조 및 재벙커를 거쳐 배기가스처리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초장부터 등장하는 볼거리인 쓰레기벙커는 마치 지옥으로 떨어질 듯 거대하게 곧추선 벽체의 칙칙하고 섬뜩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실로 충격적인 것은 이런 괴물 같은 시설이 바로 주민들의 일상생활 한가운데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이다. 김광수의 공공건축이 남다른 것은 이처럼 우리 삶의 이면에 놓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사실상 관 주도의 공공건축이 배제해온 불온한 노선이다. 권력은 늘 화합과 윤색을 선호하는 법이다.

찬란한 수도권의 그늘진 외곽을 성찰과 기억의 장소로 소생시킨 새로운 공공건축의 사례는 도시재생 사업이 더 이상 지역경제 활성화나 환경미화 차원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향후 부산시가 사람이 살 만한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아무런 물음도 허용되지 않고 아무도 묻지 않는 맹목적인 희망의 도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사라져간 뭇 영혼의 체온이 느껴지는 기억과 소통의 도시가 되어야 마땅하다. 실제로 부산을 구석구석 걸어본다면, 이 도시의 생명력은 도시계획이나 건축물의 수준에 달려있기보다는 천혜의 자연과 그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에서 뿜어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굴곡진 인생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가끔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곳의 기억의 터를 연결하면 부산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동선이 등장한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시작해 중구 영주동 언덕에 오르면 하늘 높이 솟아오른 충혼탑이 보인다. 바로 그 옆에 한국전쟁기의 악명 높은 ‘보도연맹’ 사건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언덕 맞은편에는 민주공원이, 그 들머리에는 4월민주혁명희생자위령탑이 있다. 부산은 민주주의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영주동 언덕 오른편으로 내려와 중부교회를 지나면 곧 보수동 책방골목이 눈앞에 나타난다.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에도 시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줄기차게 꿈꿨다. 이곳에서 가까운 대청로에는 일제 치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으며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던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그곳에서 남포동 방면으로 이동하면 일면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국제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부산역으로 나아가면서 1987년 여름의 뜨거웠던 항쟁의 기억을 떠올린다. 북상하여 범내골 복개천을 지나 서면의 태화쥬디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많은 학생과 직장인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한 이곳은 4·19,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의 기억이 겹친 역사의 현장이다.

서면교차로를 지나 부산시민공원으로 가서 옛 하야리야 부대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전쟁기 가장 큰 규모의 피란민 수용소가 있던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 터를 지나 한센병 환우들이 격리되어 살던 용호동 이기대에 이른다. 강한 바람과 시원스러운 경관에는 아픔의 기억이 서려 있다. 동질성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과 인연을 맺었다. 그들 삶의 흔적이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영감을 제공하는 아름다운 부산의 길을 홀로 그려본다.

부산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3. 3'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4. 4[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5. 5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6. 6'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7. 7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8. 8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9. 9[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10. 10“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1. 1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2. 2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3. 3[속보]이용철 법무장관 후보, 청문 준비 돌입…12일 준비단 첫 출근
  4. 4장동혁 “중도확장, 말로하는 연대·통합으로 되는 것 아냐”
  5. 5서영교 “조작기소 특검법안 ‘대통령 이해충돌’ 논란은 헛소리”
  6. 6[속보]당정 “소방 필수투자에 2조원 재정지원…지방부담 완화 검토”
  7. 7임광현 “소방재원 확보 위해 미래대응기금 활용, 국회와 긴밀 협의”
  8. 8민주 “정부에 ‘실거주 구분 없이 종부세 공제 14억’ 강력 요구”
  9. 9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10. 10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7. 7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8. 8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4. 4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5. 5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8. 8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9. 9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0. 10진보당 "기본소득 8개 군 배제는 직권남용, 도지사 고발"…도 "하자 없어"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3. 3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4. 4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5. 5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6. 6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7. 7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8. 8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9. 9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10. 10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살아남는 것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초등 입학생 30만 붕괴
공공재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감기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는 이유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북항 돔 아레나, BPA·부산시 대승적 결단 필요하다
위헌 소지 조작기소특검법…역풍 피할 수 있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동맹 속의 자율성, 핵자강과 전작권의 미래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양달석의 ‘목동’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