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국정 최우선 의제로 급부상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모든 관심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여름부터 우리 경제 곳곳에서 위기경보가 울리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온통 북한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은 끝내 해를 넘기게 됐고, 한 달 뒤면 또 인상되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대책도 ‘블랙홀’에 빨려들어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 같은 분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서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끝난 뒤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기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경제 문제와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해이 등을 물어보려는 기자들의 질문은 “외교에 국한하겠다”는 말로 일축했다. 이날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자랑한 ‘외교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는 것이었다. 경제외교의 전쟁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을 만나 통상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는 설명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은) 그 자체로 세계에 보내는 평화적 메시지”라면서 “모든 국민이 쌍수로 환영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비핵화의 전제가 없는 답방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제일주의”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경제정책 실정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이벤트성’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복되고 있는 대북 저자세도 지적되고 있다. 답방이 임박했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의 반응은 감지되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답방에 목말라하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해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조차도 “북쪽과 전화가 되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텐데”라고 말했을 정도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도 9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별다른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과 관련, 서울시내 곳곳에서 환영행사와 반대행사가 열리면서 국론은 양분되고 있다. 일부 친북세력은 김 위원장을 ‘위인’으로 칭하면서 ‘왜 위인인가’를 주제로 공개세미나까지 열었다. 이 단체의 단장은 얼마 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공산당이 좋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지금 (북한) 경제발전이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김 위원장의) 팬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인터뷰를 방송에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청와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김정은 답방’은 모든 이슈에 우선되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특별감사팀들의 비위 문제와 경호처 직원의 음주폭행,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등 잇따른 추문으로 인한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사퇴요구도 일축됐다. 야당에서는 ‘독선’ ‘불통’이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적폐’들의 지적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세다. 이제는 야당을 설득해보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취임 초 소통을 위해 노력하던, 그래서 문 대통령의 장점으로 부각됐던 ‘소통의 리더십’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오만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효과는 아직 깜깜무소식이고 내년에는 더욱 힘들 것이란 전망만 나오고 있는 데도 정부는 기다려 보라고만 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란 말이다. 혹시 남북관계만 잘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 때문에 눈앞의 경제위기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들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연일 추락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한 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물론 문 대통령 지지자다. “대통령 주변에 쓸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무도 ‘NO’라고 말할 줄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참모로 기용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상황 인식도 엉망이다. 참모들이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대통령이 덥석 받아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는 ‘쓴소리 특보’라도 임명해야 할 판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아니라 갈수록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경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슬로건이 떠오른다.

서울본부장·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