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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우리는 몇 가닥 통신선 위의 ‘줄타기 광대’인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02 18:47:50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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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 그 의미를 곱씹게 한 사고를 꼽으라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KT 통신구 화재’다. 통신선이 불타 주변 일대에 ‘생활대란’이 일어났다는 거다. 인터넷이 불통됐고 식당이나 상가는 카드 결제를 하지 못해 매출에 큰 손실을 입었다.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도 혼란을 겪었다고.


이런 종류의 사고가 터지고 보니 초고도 정보사회에 산다는 자만심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찔한 문명의 속도를 타고 질주하는 우리네이니 그 현기증의 정체를 성찰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서울에서 일어난 통신두절 사태는 ‘초간편 사회의 문명대란’이란 역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만은 틀림없다.
지난주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여럿 일어났다. 한 70대 남성이 대법원장이 탄 차에 화염병을 던졌는가 하면 충남 아산에선 노조원들이 노무담당 상무를 가둬놓고 집단폭행해 물의를 일으켰다. 부산의 폐수처리업체에선 유독가스 누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법원장에게 화염병을 던진 노인은 스스로를 1919년 예순다섯 살에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姜宇奎) 의사로 착각했는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최근 법원의 내홍과 맞물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노조원들의 집단폭행은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래도 지난 한주 나로 하여금 그 의미를 곱씹게 한 사고를 꼽으라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KT 통신구 화재’였다. 휴대전화가 불통이네, 카드결제가 불능이네, 은행거래가 막혔네, 시끄러웠지만 긴급 복구공사 끝에 지금은 또 잊히고 있기도 하다. 이만한 사고야 사람 사는 세상에선 늘 일어날 수 있고, 누군가가 죽거나 다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일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21세기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설핏 훔쳐봤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는지.

사고의 경위야 간단하다. KT란 통신회사의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밀집한 통신선이 불탄 것. 문제는 이 일대에서 느닷없는 ‘생활대란’이 일어났다는 거다. 인터넷이 불통됐고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 시민들이 공중전화에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식당이나 상가는 카드 결제를 하지 못해 매출에 큰 손실을 입었다. 경찰서도 112신고 접수나 내부 통신망 장애로 치안업무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응급실도 콜 폰이 안 돼 혼란을 겪었다고.

바위 밑의 실지렁이처럼 현대 문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리라고 짐작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사고가 터지고 보니 초고도 정보사회에 산다는 자만심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니, 우리네 삶이 외줄 타는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일하고, 밥 사먹고, 물건 사고, 지하철 타는 사소한 일상사가 몇 가닥의 통신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작은 화재 한 건에 수십만 명의 생활이 꽁꽁 묶였다니. 부산에서 사고가 났다면 당장 나부터 발을 동동 굴렀을 테니 이게 어찌 강 건너 불이겠나.

사고가 나면 기다렸다는 듯 허술한 관리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다. 이번에도 온갖 통신망이 얽혀 있는 곳에 스프링클러 하나 설치하지 않았다느니, 안전관리를 외주회사에 떠맡기고 있었다느니 뒤늦은 꾸지람이 나오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그런 비판이라도 있어야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긴 하겠지. 자발없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치고 간다. 테러리스트나 불만세력이 있어 전국의 통신구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이라도 지른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하지 않나. 발 빠른 영화사들은 벌써 이번 사고를 소재로 점찍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이번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전력 부족으로 인한 블랙아웃도 마찬가지. 2011년 9월 예비전력이 바닥나자 한전이 아무런 예고 없이 순환 정전에 들어간 적이 있지 않았나. 도심 곳곳의 신호등이 꺼지고, 건물 승강기가 멈추고, 은행이 마비되고, 야구 경기가 멈추고, 병원에서는 진료가 중단되는 대란이 일어난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해 3월엔 아마존 웹서비스의 미국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에서 장애가 발생해 세계 인터넷 서버의 3분의 1가량이 먹통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 지구적 규모의 ‘디지털 블랙아웃’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그래서 21세기 문명을 구가하는 우리네 삶이 아슬아슬하다는 거다.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삶은 편리의 극한으로 달려가지만 또 그만한 크기의 ‘리스크’가 쌓여가는 게 아닌가.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에 불순물을 섞어 넣으면 전기가 이어졌다 끊겼다 하면서 적절한 신호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과학자들은 반도체란 이름의 ‘마법의 돌’을 개발하는 데 몰두해 왔던 터다. 1947년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개발된 이후 반도체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오지 않았나.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내년부터 ‘2세대 10나노급’ D램의 생산에 나선다는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이다. 상상도 되지 않는 초극세 회로선폭이 아닌가.

그 얇은 회로를 집적해 우리는 온갖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는 셈인데, 초집적 반도체를 만드는 까닭이야 자명하다. 작은 기기 안에 현대문명의 온갖 기능을 쑤셔 넣으려는 욕망 때문이겠다. 당장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전화만 봐도 알 일이다. 액정화면에 애플리케이션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관련 산업이 서리 맞은 듯 사라지지 않나. 시계가 들어가니 시계회사가 흔들리고, 음악 앱이 들어가니 음반 산업이 죽는다. 카메라가 들어가니 거리의 사진점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그러니 삼성이나 애플 같은 회사는 온갖 전통 산업을 한입에 삼키는 불가사리랄밖에. 그런 초집적 기술을 기반으로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시대가 이미 도래하지 않았나.

그런데,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그만한 대가의 지불을 요구한다. 값싼 전기를 거의 무한정 공급해 도깨비방망이로나 여겼던 원전의 위험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아니었나. 기적의 신소재라 해서 해마다 3억 t을 생산하는 플라스틱이 지구 환경 파괴의 원흉이 돼버렸지 않나. 그리고 우리 발밑에 거미줄처럼 깔린 통신선 묶음의 어느 한 토막이 불타면 우리네 삶이 온통 마비돼 버리고 만다는 사실도 이번에 깨닫게 되지 않았느냐 말이다.

요즘 세상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물색 모르는 사람의 잠꼬대라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운전대를 잡으면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켠다. 낯선 길을 눈에 익히려는 시도 자체를 않는 거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조건반사적으로 운전할 뿐이다. 그럴 때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려 보인 세상이 떠오른다.

쌍방향 송수신이 가능하게 만든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계. ‘good’의 반대말은 ‘bad’가 아니라, ‘un-good’이라고 단순화시키고 ‘wonderful’란 단어를 ‘plus-good’이 대체한 세계가 이미 도래한 게 아닐까 하는 새삼스러운 두려움이 머리를 스치는 거다.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범죄가 돼 버리는 조지 오웰의 세상이야말로 디스토피아가 아닌가.

언젠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그 불편이 말할 수가 없었다. 불편보다 더 컸던 건 불안이었다. 혹시 누가 중요한 전화라도 걸어오지 않았을까, 꼭 읽어야 할 문자가 들어오지나 않았을까. 며칠 후 새 전화를 장만하고 보니 잃어버렸던 전화가 자동차 좌석 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서둘러 켜 보니 안 가도 될 회의에 오라는 전화와 광고문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내 삶을 그다지 행복하게 만드는 기계가 아니란 걸 깨달은 건 그때였다.

글쎄, 내가 무어 반문명론자는 아니다. 19세기 초 영국 직물공장 노동자들이 자기네 일자리를 뺏는다고 방적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운동을 되풀이하자고 할 터수도 물론 아니다. 나 역시 21세기의 문명에 얹혀사는 장삼이사의 한 사람일 뿐이니까.

물질문명의 발전은 직선적이고 맹목적이어서 누군가가 막으려 한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하면 전통적인 산업이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기도 할 거다. 하지만 초집적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래서 좁은 공간에 온갖 기능을 쑤셔 넣을수록 ‘블랙아웃’의 위험 역시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쯤은 의식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는 거다.

어쨌거나 서울에서 일어난 통신두절 사태는 ‘초간편 사회의 문명대란’이란 역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만은 틀림없겠다. 정부와 통신회사들은 전면 점검에 나서 보완책 마련을 서두를 일이다. 부산시도 이참에 부산의 땅 밑에 깔린 선로 관리가 어떤지 챙겨봐야 할 터.

어쨌거나 아찔한 문명의 속도를 타고 질주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에 얹혀사는 우리네이니 그 현기증의 정체를 성찰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뒤떨어지면 큰일 날 듯 호들갑을 떠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행복을 가져다 줄 건가를 한번쯤 따져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빠름과 편리를 준 문명이 우리를 노리는 역습이 무언지 예측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그래서 문명의 질주가 낳는 부작용을 줄여보려는 집단적, 개인적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대의 인문학도 문명이 던지는 경고를 숙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KT 통신구 화재를 지켜보며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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