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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깊이 판다, 될 때까지 /박창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26 19:12: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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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중심도시 이즈하라에서 차로 50여 분. 아소만의 다도해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소만은 조선 초 이종무 장군이 왜구 토벌의 공격 포인트로 삼았던 지역. 1차로의 좁은 해안길을 굽이굽이 따라가자 산길이 이어졌다. 새로 닦은 듯한 산길을 2㎞여 오르자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다. “보이나요. 저쪽이 한국 거제도입니다. 거리는 60㎞쯤 되지요. 일한 해저터널이 뚫리면 한국 땅으로 건너갈 곳이지요.” 일한터널연구회 관계자의 설명은 사실적이고 진지했다.

일한터널연구회는 지난 15, 16일 ‘일한터널, 대마도 한일 지도자 포럼’을 열면서 이즈하라 인근 아렌지역에 들어선 한일터널의 대마도 조사사갱(斜坑)을 공개했다. 일본 국제하이웨이재단은 2014년 2㎞의 진입로를 뚫은 뒤 이곳에 폭 8m, 길이 10m의 사갱을 뚫었다. 이 사갱은 앞으로 최대 1㎞까지 해저를 파고들어, 대마도 서수도(西水道)의 해저 지질조사 및 공법 연구, 향후 들어설 한일 해저터널의 파일럿 터널(선진도갱) 등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한다.

한일 간 합의는커녕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않은 해저터널의 조사갱을 뚫고 있다는 것은 무모해 보이면서도 무섭게 다가왔다. 1986년 규슈 가라츠에 뚫은 첫 시굴갱(580m)의 충격 그 이상이었다. 대마도 조사갱은 대마도를 한일 해저터널의 중간기착지, 동북아 요충지로 선언하고 설정하는 일종의 깃대로 보였다.

한일 해저터널은 1981년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주창한 세기적 프로젝트다. 국제하이웨이재단은 1980년대 중반부터 해저터널 사갱기지로 쓰기 위해 규슈의 가라츠(20만 ㎡) 이키(5만 ㎡) 대마도(100만 ㎡) 등에 그 지역 사람들의 이해와 협력을 얻으면서 꾸준히 부지를 매입했다. 지난 8월엔 일본 전역 47개 도도부현에 해저터널 지부가 결성됐다.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이 3000억 원에 이른다니, 결코 가볍게 볼 민간 프로젝트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반대 기류가 강한 듯하다. 한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 의지를 비쳤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연구 용역까지 지시했으나 결론은 매번 부정적이었다. 경제적 실익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한일 해저터널이 되면 유라시아 철도 기종점의 장점을 잃게 돼 부산항은 망한다”고 말해 논란을 부채질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일 해저터널 금지 청원’이 올라 1만3894명이 동의했다. 한일 간 풀리지 않는 과거사도 복병이다. 한일터널이란 이슈 속에 정한론, 대동아공영권 같은 군국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 때문에 연구와 논의조차 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꼴이다. 상대가 긴히 움직일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상대를 몰라 당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지피지기는 놓칠 수 없는 화두다. 거기에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일터널은 섣불리 찬반을 얘기할 수 없는 어렵고도 긴요한 미래 이슈다. 세계 최장(250㎞), 100조 원의 사업비, 까다로운 해저공사, 안전성 확보, 한일 지분 조정 등 하나하나가 핫이슈다.

이 속엔 중요한 국제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재정립은 물론, 동북아의 신경제·신문명, 그리고 새 질서에 대한 복잡한 함수가 개입돼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동북아 철도 공동체’와도 엮인다. 경제성과 더불어 국제 역학, 미래 비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10년 후, 30년 후에도 그럴 것인가. 깊이 논의하고 통찰할 문제다. 21세기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것은 연결, 그것도 초(超)연결이다. 일본을 진정으로 이기는 길을 연구해야 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가 활동하고 있으나 시민적 관심은 미약하다.

대마도 포럼을 마칠 시점, 국제하이웨이재단 사토 히로후미 이사장이 의미심장하게 한마디했다. “경제인은 채산이 잡히지 않으면 뒤로 빠집니다. 정치가는 반대하면 계획을 접지요.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디깅 딥’(Digging deep)할 겁니다.” 이 용어는 영국의 ‘모노클’이란 잡지가 2017년 6월호에 한일터널을 다루면서 붙인 기사 제목이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뱃길 내내 ‘디깅 딥(깊이 판다)’이란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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