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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아폽토시스와 적자생존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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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26 19:10:3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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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한 자태를 뽐내던 단풍도 어느덧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불현듯이 ‘왜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질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해법이 바로 ‘아폽토시스(Apoptosis)’라는 ‘프로그램화된 세포사멸’설이다.

1972년 영국의 과학자들은 전자현미경을 통하여 스스로 사멸하는 세포를 발견하고 이 세포사를 ‘아폽토시스’라고 명명했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 ‘사라지다’의 ‘apo(=off)’와 ‘떨어지다’의 ‘ptosis(=falling)’에서 유래하는데, 마른 잎이 땅에 떨어지는 이미지에서 ‘아폽토시스’라고 불리게 됐다. 초기에는 이 세포사멸의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아폽토시스’는 생물의 발생과 성장 등에 있어서 매우 체계적으로 세포에 미리 설계되어 있는 ‘프로그램화된 세포사(programmed cell death)’라고 밝혀졌다. 그렇다면 동물과 식물세포에서 ‘아폽토시스’는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 것일까?

우선 태아의 손가락 형태가 시간 경과에 따라 다섯 개의 형태로 분화해 가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의 손가락은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임신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태아의 손가락들 사이에는 세포가 있어서 야구글러브처럼 붙어 있다. 50일이 지나면 손가락들 간 세포가 ‘아폽토시스’에 의해 사라지면서, 다섯 개의 손가락 모양 틀이 형성된다. 이 과정이 가동되지 않으면 손가락이 올바로 생성되지 않는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버트 호로비츠’ 그룹은 ‘꼬마선충’을 연구한 결과, ‘Ced-3’이라는 유전자가 ‘아폽토시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사람에게도 Ced-3와 비슷한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아폽토시스’는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올챙이는 유영에 필요한 긴 꼬리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통에서 손발이 나오는 거의 동시에 꼬리가 짧아져, 최종적으로 꼬리가 완전히 소실되는 상태로 변화한다. 이러한 올챙이 꼬리의 형태 전환도 ‘아폽토시스’에 의해 올챙이 꼬리의 세포가 없어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단풍나무는 날씨가 추워지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잎의 손잡이 부분에 자리 잡은 유연조직인 ‘떨켜’를 만든다. 이 ‘떨켜’는 잎에서 생성된 양분을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잎의 산성도를 증가시킨다. 산성화로 인해 잎의 엽록소는 파괴되고,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가 생성되어 단풍으로 물든다. 또한 ‘떨켜’는 세포 내에서 ‘노화호르몬’ 이라고 부르는 ‘에틸렌’ 가스를 생성해 세포 내에서 ‘아폽토시스’를 유도한다. 그 결과, ‘떨켜’가 형성된 특정부위에서 조직의 약화가 일어나 단풍이 낙엽수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체 조직의 일부분을 다른 형태로 변화시킨다. 또한 ‘떨켜’는 잎을 떨어뜨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한다. “쓸모 없음의 더욱 큰 쓰임새”인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이라는 진리와 상통한다. 이러한 ‘아폽토시스’는 생물체들이 항상성 생활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들 자신의 형태의 변화를 유도한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손가락의 미분화, 꼬리 달린 개구리 및 나비의 불완전한 ‘우화(羽化)’ 같은 상황이 초래된다. 즉 자연계가 적자생존을 위해 탑재한 시스템 중 하나가 ‘아폽토시스’인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이런 ‘아폽토시스’와 유사한 시스템을 본받았으면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늑장대응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맹자에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의 순리를 따르면 살고,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면 사멸한다’라는 뜻이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행복하고 참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낡은 시스템은 ‘프로그램화된 세포사’처럼 자발적으로 교체되어야만 한다. 또한 유전자에 삽입된 ‘아폽토시스’와 같은 스마트한 시스템을 차세대에 소중히 물려줘야 한다. 궁극적으로 단풍낙엽과 신체 조직의 변화는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경대 생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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