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오늘 식당에 소시지 나옵니다. 딴 데 가지 말고 안에서 드이소.” 40대 중반 나이에 소시지라면 ‘환장’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구내식당에 소시지가 나오는 날엔 여기저기서 알려준다. 식당 영업 비밀처럼 취급되는 월간 식단표를 입수해 ‘소시지’에 형광펜을 칠해서 주는 후배도 있다.
중·고교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도시락 반찬은 ‘평등’하지 않았다. 누구 집이 잘살고, 누구 집이 가난한지 반찬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흔히 ‘줄줄이 비엔나’라고 불린 소시지는 특히 귀했다. 반찬통에 비엔나소시지가 든 녀석들은 뚜껑도 열지 않았다. 제 입으로 소시지를 가져갈 때만 뚜껑을 살짝 들어 젓가락을 기민하게 밀어 넣었다. 몸통에 체크무늬 칼집을 내거나, 세로로 몇 갈래를 잘라 문어 모양으로 구운 비엔나소시지는 녀석들의 집안 사정만큼이나 윤기가 좔좔 흘렀다.
반면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 녀석의 반찬통엔 전날 저녁 식탁에 올랐던 김치나 나물 어묵 단무지 등이 주로 담겼다. 지금은 흔해 빠진 소시지가 그땐 꽤 비쌌다. 그리고 웬만한 집 어머니는 검소함이 몸에 뱄었고, 따로 장을 봐서 도시락 반찬을 장만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집에서 먹다 남은 반찬이면 충분했다. 그 시절, 그렇게 소시지가 맛있어 보일 수 없었다. ‘초딩 입맛’이라 놀림당하는, 지금의 ‘소시지 사랑’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땐 밥통도 달랐다. 야간자율학습 탓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다녔다. 추운 겨울 좀 사는 집 녀석들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진공 보온밥통을 점심용 하나, 저녁용 하나 들고 다녔다. 뚜껑을 열면 밥과 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반대로 형편이 좀 어려운 집 녀석들은 플라스틱 안에 유리가 든 보온밥통을 들었다. 어찌나 유리가 잘 깨지는지, 밥통을 흔들면 사각사각 유리 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보온이 될 리도 없다. 그나마 유리 보온밥통도 하나뿐이었다. 보온밥통이 비싸다 보니, 두 개 중 하나는 납작한 양은 도시락통에 담아 다녔다. 지금이야 추억으로 꺼낼 수 있는 얘기지만, 그땐 참 세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30년 가까이 흘렀고, 그때의 도시락은 지금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반찬을 담아 먹는 급식으로 바뀌었다. 얼핏 평등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식판엔 가난의 낙인이 찍힌다. 단계적으로 의무급식(무상급식)이 확대되기는 했다. 그러나 부산 고교생 가운데 저소득층 일부만 의무급식을 받는다. 누가 돈 내고 밥 먹고, 누가 공짜 밥을 먹는지 자기들끼리는 다 안다. 의무급식을 받으려면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못 할 짓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라”는 어른들도 참 나쁘다. 반찬과 밥통의 다름으로 자존감에 상처받았던 그때보다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담아 먹는 지금의 방식이 더 잔인하다.
드디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부산 모든 초중고에서 의무급식을 시행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갈등과 진통이 많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런데 돈이 좀 모자란 모양이다. 당장 내년부터 예산의 10%(169억 원)를 분담해야 할 일선 구·군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의무급식을 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항상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휘둘렸다. 그 이면엔 ‘돈의 논리’가 자리했다.
구·군이 돈 없다는 것 잘 안다. 꼭 필요한 사업 예산 몇천만 원 만들기도 어렵다는 것 안다. 그래도 뒷말 나오는 업무추진비, 공개도 안 할 쓸데없는 용역, 관변단체에 주는 보조금, 생색내기용 민원 예산, 매년 중복이라 지적받는 축제 등을 좀 줄여보자. 멀쩡한 보도블록도 자꾸 덮었다 들어냈다 하지 말고 몇 년만 더 쓰자. 그러면 학생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일 돈은 나오지 않을까.
아이들 밥을 놓고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건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 헌법은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와 함께 교육의 의무를 부여한다. 군대에서도 밥은 그냥 준다. 돈 내고 밥 먹으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육의 의무를 다하면, 밥도 의무적으로 주는 게 맞지 않는가.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이다.
평등한 밥을 먹고, 평등하게 교육받고, 자존감을 높인 학생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 공평한 사회를 만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