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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학생 학교 선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15 19:33:1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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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59만5000여 명에 이르는 수험생으로서는 일단 인생의 첫 번째 짐을 내려놓은 셈이지만 모두가 홀가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만족하는 수험생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속상해하며 벌써 내년을 염두에 두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아니 냉정하게 말해 결과와 그에 따른 대처는 모두 각자의 책임이고 선택이다. 정말 그래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오직 스스로만의 계획과 의지로.
서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부정 사건은 오늘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야말로 벌거숭이로 보여준다. 아직 유죄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단언해 말할 수는 없는 사정이다. 그러나 ‘엄격한 증명’이라는 판결의 전제 원칙이 어떤 판단을 이끌지 몰라도 보통사람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와 언론보도가 오해나 조작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생각해보려는 것은 사건의 실체보다 ‘선생’과 ‘아버지 혹은 부모’라는 어이없는 주인공이다.

먼저 ‘선생’으로서의 그. 기억이 아니라 추억으로, 내 세대 선생님의 체벌은 참 가혹했다. 시험 채점이 끝나면 언제나 매타작이라는 푸닥거리가 기다렸다. 반(班) 1·2등에게는 칭찬과 격려였지만 그 아래는 목표 점수를 기준으로 엉덩이에 불이 났다. 그놈의 점수가 뭐라고. 그런데 저마다 다른 목표 점수가 선생님 임의대로였다는 것은 좀 터무니없었다. 그나마 성적으로 가해지는 체벌은 엉덩이 불이 식기도 전에 인상 한 번 찌푸리고 넘길 수 있었지만 사소한 실수나 소홀함에 무시로 날아드는 출석부 모서리며 주먹질의 체벌은 정말 욱 치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묘한 것은 선생의 체벌이 일절 용인되지 않는 바뀐 세태에 수긍하면서도 그 시절의 일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여건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제자나 아예 성적이 오를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한 체벌은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이었다. 내세우는 명분은 분명 반 전체 성적이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학생 개개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나름의 채찍질이었으니 ‘사랑의 매’라는 말에 고개를 저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인데, 그 시절 선생님이라고 특별히 아끼는 제자가 어찌 없었겠나. 그렇지만 개인적 호불호였지 후광이나 빈부 같은 치졸한 기준에 따른 구분은 아니었다. 특히 시험 뒤의 푸닥거리에서 호불호에 따른 차별은 오히려 아끼는 제자에게 더욱 가혹한 편이었다. 그게 선생으로서 자기 성취의 욕심이었다 하더라도 돌이켜보는 제자로서는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말 기분 나쁘고 욱 하기도 했던 체벌도 그렇다. 결국 지나치게 허둥대거나 까불다가 일으킨 흠에 대한 지적이었으니 성장하는 만큼의 준비성과 신중함을 가르쳐 몸에 배게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여전히 체벌이 정당하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름과 그름은 대부분 시대의 흐름을 따르게 되는 것이니 그때는 그랬다는 뜻이다. 또한 가르침의 맨 앞에는 언제나 긍정과 사랑이 있었다. 어른과 역사는 따르고 거울로 삼는 것이지 부정하고 전복하라고 배운 적은 없었다. 1등이 되라고 독려하기는 했어도 우정이라는 덕목을 우선으로 삼았지 질시의 경쟁은 부추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선생님은 아직도, 앞으로도 선생님이다.

그는 자매의 아버지이기 전에 선생이었다. 학생에게 구분을 두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생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인데 기준마저 가장 삿되었다. 부정이고 피해라고 해봐야 기껏 두 순위 차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학생이 공정을 의심하는 순간 학교도 선생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부정의 자기합리를 위해서는 긍정과 사랑이 아닌 부정과 미움을 가르쳐야했을 테니 그는 모든 학생의 가슴속에 지워지기 어려운 때를 묻힌 것이다. 무섭다. 선생과 학교를 부정하는 학생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대하며 살아가게 될지.

‘부모 혹은 아버지’로서의 그. 필경은 1·2등의 영예로 나란히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 으스대며 사는 자매의 인생을 계획했으리라. 들키지 않았다면 정말 그리 되었을지 모른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손아귀에 쥐어 으스대며 사는 인생. 그렇더라도 이미 아비와 공범이 되어 저지른 부정의 죄의식은 평생토록 목에 걸릴 텐데 온전한 삶이 되었을까. 참으로 어리석다.

거짓은 더 큰 거짓으로 덮으려 하게 되고 죄는 더 큰 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리 되지 않으려면 단번에 각성해 벌거벗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자매는 경찰의 추궁과 드러나는 증거에도 부정하고 둘러대는 모양이니 점점 거짓과 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전형이다. 마음속 핑계는 아버지 보호로 삼을 수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버둥거림이기도 하다. 아비의 시작은 자식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살기 위한 거짓에 자식마저 끌어들이는 격이니 파멸의 수렁만 깊어진다.

선생은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즉 시대의 어른인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진짜 어른은 감히 나서지도 못할 처지다. 부정과 증오가 넘실거리는 세태에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어른이 부정되니 선생이 없고, 선생이 없으니 학교도 없는 것이다. 학교라는 이름은 그저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오직 성적만 목표이니 학부모가 선생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학생이 희롱해도 혀나 찰 뿐이다.

‘엉망’이 되어버린 시대. 민낯으로 반성하자면 나부터 잘못했다. 자식에게 1등을 기대했고 경쟁에서 이기라 가르쳤으니 원죄의 공범이다. 지켜보느라 나도 고단했지만 녀석은 더 고단했을 것이다. 그나마 ‘우정’과 ‘예의’는 입에 달았더니 그런 대로 살아가고 있다. 제 그릇대로 길을 찾으니 살 수 있고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 않은데 정말 괜한 짓을 한 거다. 입을 다물어야 어른이 맞는 모양이다. 지갑을 열면 웃음도 얻겠지만, 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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