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 부산항에서는 희귀 물고기를 가득 싣고 온 우리 원양어선 한 척에 관심이 모였다. 이른바 메로(파타고니아 이빨고기) 어종으로,남빙양 해역에서 잡은 것이었다. 메로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연안에도 있지만 남극해의 수심 1000~2200m 심해에 서식하는 게 최고 품질로 평가되었다. 지금은 맛이 좋고 비싼 어종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당시로서는 국내에 처음 반입된 터라 세인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메로 조업을 시작한 것은 불가리아, 러시아, 칠레, 우크라이나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였기 때문이다.
메로는 지구환경과 관련된 남극 연구분야에서도 크릴(새우 같은 갑각류)과 함께 중요 해양생물로 꼽힌다. 개체 수 등으로 생태계와 기후변화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특히 남극해 먹이사슬의 핵심인 크릴은 빙하 가장자리에 사는 터라, 빙하가 녹으면 생태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 외 어선들의 무분별한 어획도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메로의 경우 멸종위기종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에 의해 어획량과 조업지역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법 조업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불법어업국이란 오명을 들었다.
엊그제 호주 호바트의 CCAMLR 연례회의에서 남극해에 180만 ㎢ 규모(우리나라 면적의 18배)의 세계 최대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려는 안이 좌절됐다는 소식이다. 이는 남극 헤들해(대서양 쪽)의 메로, 크릴, 펭귄, 물개, 고래 등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해 어업을 금지하는 내용. 하지만 중국·러시아·노르웨이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들 생물은 해양 생태계 구조와 기후변화가 해양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긴요하다. 과학계에서 벌써부터 이를 지적했는데도 무산됐으니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알다시피 기후변화의 피해는 갈수록 심각하다. 남극도 이제 예외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빙붕이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플라스틱·화학물질 등의 오염으로 바다 생태계는 신음하고 있다. 올해 초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의 현장조사 등에서도 그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건강한 바다는 지구환경과 밀접하다. 바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마지막 남은 생명·자원의 보고(寶庫)인 남극권이 인간의 탐욕에 오염될수록 환경재앙의 시계는 더 빨라지게 된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