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취임 4개월 만에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자신이 선택한 인사가 잇따라 역풍을 맞았다. 박태수 정책특보는 공무원노조와 갈등 끝에 지난달 29일 사표를 던졌다. 박 특보의 사퇴는 오 시장을 상당히 당황케 했을 것이다. 하루 뒤인 30일엔 시 산하 공사·공단 대표에 내정된 2명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응모 철회 형식을 취했지만 여론에 떠밀린 낙마다. 오 시장 취임 후 첫 공공기관 인사였기에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공공기관장 인사의 경우 내정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결과도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부산시가 내정자를 발표한 게 지난달 12일이다. 그리고 시의회 인사 검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부산시는 엘시티로부터 선물을 받은 공직자가 28명 있다며 그중에는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와 김종철 부산지방공단 스포원 이사장 내정자 2명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내정자들은 이때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 오 시장도 손을 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이 서병수 전 시장 재임 때 있었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 시장은 두 내정자가 엘시티 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그렇다면 검증 부실, 무능한 거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만약 알고도 지명했다면 오만하다는 힐난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청문회 과정을 거쳤다. 정경진 내정자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과했다. 이때만 해도 두루뭉술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시민단체의 반대가 계속되고 이어 열린 김종철 내정자의 청문회가 끝난 뒤 사태는 급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인 시의회가 정·김 두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이들이 버텼다면 오 시장은 임명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참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두 내정자가 응모 철회라는 형식을 통해 오 시장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지만 그러기엔 멀리 와버렸다. 이렇게 물러날 것을 시간을 끌다 인사 실패라는 생채기만 낸 꼴이 됐다. 그동안 ‘엘시티 비리’가 대표적인 부산의 적폐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오 시장이 엘시티에 발목 잡힌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후속 인사도 쉽지 않게 됐다.
박태수 정책특보의 사표 소동은 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박 특보가 누구인가. 오 시장이 출마했던 선거마다 최측근에서 그를 도왔고,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도 정책특보를 맡았던 ‘복심’이다. 오 시장 취임 후엔 끊임없이 시정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라인 한 사람의 사표 소동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박 특보의 사표는 곧 반려됐다. 예상한 일이다. 오 시장이 집권 초반부터 수족을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배경이다. 지난달 29일 자 본지 1면의 머리기사 제목은 ‘혁신-월권 충돌, 부산시정 난기류’였다. 표면상으론 낙동강에코센터의 민간위탁운영 논란이지만 실상은 오거돈 정무라인과 시 관료조직의 힘겨루기이다. 공무원노조는 ‘왕특보’의 월권으로 몰아붙였지만, 밖에서는 개혁에 대한 공무원들의 저항으로 보고 있다.
오 시장이 취임한 지 꼭 넉 달이 됐다. 지난 선거에서 시민은 부산의 정권교체를 원했고 오 시장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시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했다. 시민들은 그야말로 확 바뀐 부산을 기대했지만 넉 달이 지난 지금 그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그다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부산이지만 지도자복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엄친아’를 둔 경남과 비교되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오 시장의 콘텐츠 부족도 한몫했다. 뚜렷한 비전 제시 없이 지난 정권의 치적 뒤집기를 하고 숙의민주주의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시의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첫 시험대였던 인사 검증에서 준비 안 된 의원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관료조직의 개혁 거부반응이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시청 주변에서는 ‘오 시장이 재선은 못 할 거다. 4년만 죽은 듯이 지내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전형적인 복지부동이다. 가뜩이나 오 시장이 보여준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나마 시정 개혁을 주도했던 박 특보의 사퇴소동은 부산 공직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사 실수는 합당한 후속 인사로 극복하면 된다. 다만 내부 갈등이 터져나와서는 안 된다. 화합도 좋지만 오 시장이 개혁에 좀 더 힘을 싣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집권 초기 힘이 있을 때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 민선 이후 첫 정권교체를 이룬 부산이 어렵게 잡은 재도약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수는 없다. 바꿔봐도 별볼일 없더라는 말이 나와서야 되겠나. 2등 자리에서도 밀려난 부산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나.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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