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못 만났던 친구도 많이 봤다. 그 와중에 지난 19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롯데 자이언츠가 양상문 전 LG 트윈스 단장을 신임 감독에 선임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야수 출신 코치가 유력한 신임 감독 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018시즌 거인은 실책 최다 1위(117개)였다. 2017시즌 최소 실책(86개)에서 1년 만에 완전히 다른 팀이 된 셈이다. 앞서 이종운-조원우 전 감독은 모두 외야수 출신이었다. 유력한 후보인 내야수 출신 감독을 앞세워 수비 안정화를 노릴 것으로 봤다.
자이언츠가 양 감독을 다시 선택했다는 건 젊음보다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친정팀을 잘 알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일선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단장직을 1년간 경험한 점도 플러스 요인이 됐다.

양 감독은 부산 출신이다. 고향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활약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현역 선수 시절 스타 플레이어 대우를 받은 그는 지도자로 변신해 투수 조련에 일가견을 보였다. 자신도 투수 육성에선 누구에게도 질 마음이 없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유명한 야구 격언인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에 맞춰봤을 때 그가 거인 마운드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양 감독이 2004년 롯데 지휘봉을 잡았던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선수가 신인이던 장원준(두산)이다. 희소성이 큰 좌완투수라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지금도 그의 관심이 필요한 젊은 자원이 많다.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한 경험이 있는 박세웅·김원중과 정성종·김건국·윤성빈이 대표적이다. 5명 중 두 명만 성장해도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유망주 육성도 양 감독의 과제다. 올해 선수단 사이에서는 ‘2군에서 아무리 잘해도 1군에서 뛰기 어렵다’는 말이 돌았다. 2군에서 콜업된 선수가 벤치만 지키다 김해 상동 구장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조원우 전 감독이 주전 위주로 라인업을 짰다는 얘기다. 유망주들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했다. 시즌 막판 빛을 본 내야수 전병우 역시 기회가 조금 더 일찍 주어졌다면 더 성장했을 것이다. 롯데가 지난해 3위에서 올해 7위로 추락한 건 팀이 전체적으로 힘이 떨어졌을 때 활력을 불어넣을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도록 배려해야 한다.

양 감독의 ‘류현진 사례’는 유명하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 때였다. 동산고 투수 류현진과 광주일고 투수 나승현을 두고 양 감독은 누구를 1순위로 선택할지 고민했다. 류현진이 미흡한 제구와 수술 전력으로 점수가 깎인 반면 나승현은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독 입장에서는 재임하는 동안 성적이 중요하니까 류현진을 뽑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어쨌든 그때 결정을 계기로 양 감독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단계 더 성장했을 거라고 본다. 롯데·LG 감독 당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한 시즌도 있다. 모두 지도자 생활의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또 하나 양 감독이 신경 써야 할 건 내야 수비다. 사실 올 시즌 선수들과 수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정확한 수비 지시나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롯데의 약점이 수비라는 건 팬들도 다 안다. 수비력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타격은 어느 정도 타고나지만 수비는 반복 훈련이 유일한 답이다.

우려스러운 대목도 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대개 성적을 올리려고 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경험 많은 양 감독이 그런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계약 기간이 2년인 만큼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시즌 전체를 보고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반부터 의욕적으로 나서다가 일찍 지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KNN 야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