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이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15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연내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가 이달 안으로 마무리돼 조만간 남북 주민, 외국인 관광객 등의 자유왕래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북한 병사가 JSA의 ‘72시간 다리’를 통해 귀순하다 북측 병사들의 총격을 받고 쓰러지던 장면을 보며 마음 졸였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눈만 뜨면 쏟아지는 한반도 정세 변화를 좇아가기에 숨이 가쁠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북이 여태껏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기에 국내는 물론 세계 열강들의 우려와 견제가 만만치 않다. 한반도 비핵화의 키를 쥔 미국은 남북 관계가 ‘속도 위반’이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남북 어디쯤에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중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도 큰 산이다. 지금은 한술 더 떠 매일 마시는 공기의 질 또한 중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한중 언론인 교류프로그램으로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중국의 대외전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중견 학자들을 잇따라 만나 보니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대한 불편한 속내가 느껴졌다.
중국의 대표적인 외교관 양성소인 중국외교학원 교수들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시종일관 ‘미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해 한한령(한류 확산 금지)으로 이어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주권국으로서 한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외교학원은 우리의 외교부 장관에 해당하는 현직 외교부장인 왕이를 비롯해 다수의 장관과 수많은 외교관을 배출했기에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이곳을 대표하는 노학자인 쑤 하오 교수는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을 빨리 포기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다소 파격적인 견해로 기자의 귀를 의심케 했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미국을 비핵화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전략이론 연구 학자로서, 미국의 국가 안전 전략을 분석해 보면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북한의 핵 개발을 어느 정도 용인했다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자 북핵 관련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의 불확실성 요소는 ‘미국’이라고 지적했다.
북중, 한중 관계의 신진 학자인 링 솅리 교수도 한중의 북핵 접근 방식에 이견이 생긴 것은 미국 탓이라고 했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자주적 외교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사드 배치 또한 주권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중국판 사드로 불리는 러시아산 S-400이 중국 산동성에 설치된 것과 관련해서는 한반도와 전혀 상관 없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 확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로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그도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느린 이유는 “(해결 의지가 있는) 중국과 달리, 해결 의지가 없는 미국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삐딱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북한의 비핵화가 더 멀어졌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의 갈등이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신냉전 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북중 관계 복원을 통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벼르는 중국, 수 틀리면 한미군사훈련 재개라는 카드도 꺼낼 수 있는 예측불허 미국. 거대한 두 암초를 사이에 둔 채 불어오는 남북의 훈풍을 마냥 즐기고 있을 수가 없다.
독자여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