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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국가보안법이란 ‘지뢰’를 어찌 할 것인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14 18:46:33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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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개폐는 오랫동안 ‘성역’이었다. 보수우파 쪽은 딴 건 몰라도 ‘국가보안법’만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일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이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 다른 곳도 아닌, 평양에서 말이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변화의 발걸음을 옭아맨다면 없애거나 고치는 게 당연하다. 국가보안법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지 않나. 지금부터 개정이나 폐지 문제를 찬찬히 검토해 보자. 시대에 뒤떨어진 독소조항이라도 손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지뢰처럼 잠복해 있는 문제는 여럿이다. 평소엔 땅 밑에 숨겨져 있다가도 슬쩍 건드리면 ‘쾅’하고 터지는 것들 말이다. 이를테면 전시작전권 이관,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 사건의 진실 규명 같은 안보문제가 그렇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북한과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주장도 그런 지뢰 중의 하나였지만, 이젠 그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남아 있는 지뢰 중의 하나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다.

국가보안법 개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오래전부터 제기해 오긴 했지만 오랫동안 ‘성역’이었다. 자칫하면 ‘빨갱이’로 몰리기 딱 좋은 이슈여서 다들 입에 올리기를 꺼렸던 거다. 보수우파 쪽은 딴 건 몰라도 ‘국가보안법’만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일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이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 극우주의자들의 시각으로는 다른 곳도 아닌, 적의 심장부 평양에서 말이다.

노무현·김정일의 10·4선언 11주년을 기념하려고 방북한 이해찬은 지난 5일 평양에서 기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평화체제로 이행하면) 법률적으로 재검토할 게 많다.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하고 남북 간 기본법도 논의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난 건 예상됐던 수순이다. 수석대변인 명의로 나온 논평은 이랬다. “현재 북한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비핵화도 실질적 진전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국가보안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비대위원장 김병준도 못마땅해했다. “(북한 정치인들을 상대로) 상사한테 보고하듯이….” 이 당 출신 국회부의장 이주영도 거들었다. “김영남과 이해찬이 북측의 통일전선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제정신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야당의 반발엔 이해찬이 북한의 고위인사들을 만나 했다는 말이 기름을 부은 측면도 있다. 그는 “우리가 정권을 뺏기면 하고 싶어도 (교류를) 못 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안 뺏기게 당을 철통같이 방어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라고 했다는 거다. 내 생각에도 평양이란 장소가 적절했든지는 의문이다. 정당 대표로서 한 말이라 해도 ‘정권을 절대로 안 빼앗기겠다’는 발언은 국민에 대한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그나마 국가보안법의 ‘국’자만 꺼내면 곧바로 ‘용공분자’로 몰던 옛날과 견줘선 야당의 반응이 덜 거친 셈. 그들도 지금이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기 때문이겠다.

이해찬도 서울로 돌아와서는 발언 수위를 낮췄다. 우리 측 기자가 질문을 해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다는 거다. “대립과 대결 구조에서 평화공존 구조로 넘어가는데 그에 맞는 제도나 법률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보안법도 그중에 하나라고 얘기한 것”이라며 “폐지, 개정한다고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노회한 정치인 이해찬이 야당의 반응을 예상 못 해 돌출적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닐 거다. 개인 소신을 표출한 건지, 집권세력 내부의 도상계획을 총대를 메고 슬쩍 흘린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론 간 보기’용이 아니었겠느냐는 게 내 추측이다. 그러기에 도마 위에 오른 생선처럼 펄떡거리기 좋아하는 ‘싸움닭’ 이해찬도 서울로 돌아와선 준비라도 한 것처럼 ‘물타기’ 멘트를 낸 게 아니겠나.

집권세력이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한 건 이유가 있다. 14년 전인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발언해 일진광풍이 일었던 건 다들 기억할 거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 이를 저지했는데, 이 문제를 설 건드린 것도 노무현 정권이 후일 사면초가에 빠진 이유 중의 하나가 됐던 거다. 그러니 트라우마랄까, 학습효과랄까, 현 정권도 국민 정서를 살필 수밖엔 없을 터.

‘국보법 개폐’ 논란은 일단 잠복하는 모양새이지만 내 생각엔 시간문제일 뿐 언제고 수면 위로 도로 떠 오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북핵 문제가 아직 타결에 이른 건 아니지만, 남북 간 교류는 이미 깊이 진행돼 가고 있지 않은가. 문 대통령이 이미 김정은과 세 차례나 만났고, 연말엔 김정은의 서울 답방도 예정돼 있다. 이런 현실은 북한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과 정면충돌하는 게 어김없는 사실이다.

국보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따지자면, 대통령은 물론 정부 주요 인사, 국회의원은 물론 재벌 총수와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죄다 제6조 잠입탈출죄에 걸릴 판이다. 평양 시민에게 연설한 대통령은 제7조 찬양고무죄에 걸릴 거다. 법에도 없는 통치권 개념을 들이댄다 해도 법과 현실의 괴리를 완전히 메우진 못한다. 그럼 우리네 장삼이사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모모 사람들이 평양을 수시로 드나드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제10조 불고지죄에 걸리는 걸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변화의 발걸음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면 없애거나 고치는 게 당연하다.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지 않나. 1948년 제정된 지 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자구 하나 고쳐선 안 된다는 주장이 온당할까. 거의 적용되지 않은 채 사실상 사문화된 법을 그냥 방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점을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언론이라고 해서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이해찬을 비난했던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의 성명서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동안 변화하는 시대 상황과 남북관계에 맞추어 국가보안법의 해석 및 적용도 완화돼 왔으며, 남북관계 개선에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국보법이 사실상 사문화에 가깝게 됐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활동에 국가보안법을 가져다 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국보법이 굳이 있어야 할 이유는 뭘까.

한 보수언론은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엔 국보법이 일부 남용됐던 것이 사실이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권 차원에서 국보법을 악용하는 일은 사라졌다.” 국보법이 나라를 지키는 데 쓰이기보다 독재정권 지킴이로 동원됐다는 것, 지금은 사실상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지 않나. 쓰이지도 않는 법이라면서 국민을 가위눌리게 하고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걸 그냥 둬야 할 까닭은 또 무얼까.

대북 관계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최소한의 안전판이 될 법 자체를 없애 버려서 될 일이냐, 간첩이 날뛰면 무슨 근거로 잡아들일 거냐는 보수 노년층의 걱정을 마냥 웃어넘길 건 아니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면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개정이나 폐지 문제를 시간을 두고 찬찬히 검토해 보자는 것. 만약 폐지한다면 간첩 검거와 처벌 등 꼭 필요한 조항은 형법에 옮겨 살리면 되지 않을까. 하다못해 이적 표현물 소지, 찬양고무, 잠입탈출, 불고지죄처럼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독소조항이라도 없애거나 손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유신과 5공 시절엔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이 막걸리 한잔 먹고 “먹고 살기가 북한보다 못하다”고 푸념하거나, 제집을 강제 철거하는 단속반원에게 “김일성이보다 나쁜 놈아!”하고 욕했대서 잡혀 들어가기도 했다. 오죽하면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별칭을 얻었을까. 이젠 ‘막걸리 국사범’을 양산하는 시대는 아니라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법 조항은 손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것조차 시기상조라면, 북핵 문제가 해결돼 평화협정을 맺을 때 맞출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정치적·사회적 공론의 장에 올려놓고 토론에 나설 일이다.

   
지금은 6·25도 아니고, 공비가 출몰하던 1960년대 말도 아니다. 걸핏하면 ‘간첩단 일망타진’이란 신문 헤드라인 아래 어부나 유학생의 얼굴 사진을 담은 간첩조직도가 실리는 시대도 아니다. 보수야당과 범 보수진영도 국가보안법이란 단어만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일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토론에 응해야 한다. 지금 휴전선에서 지뢰 제거 작업이 한창이다. 이제는 국가보안법이란 지뢰의 제거를 논의할 때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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