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 동안 내게 충만한 시간이 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전에 다녀온 일이다. 전시의 시작은 안개가 자욱한 것같은 작은 공간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영화 OST와 영상이 흘러나오는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시에 가기 전 보았던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역시 그랬다. 그의 인생과 음악은 이유를 채 알기도 전에 온몸으로 느껴지는 전율과 감동이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영화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가 작곡한 음악은 들으면 “아, 이 음악”하고 알 만큼 많이 알려져 있다. 음악이 알려진 것에 비해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크지 않다. 그는 단순히 음악가로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환경운동가이고,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지성인이며, 평화를 위해 애쓰는 예술인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2014년 인후암 판정을 받고 데뷔 이후 처음 활동을 중단한 시기부터 재개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부서진 강당 위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를 맞고 살아남은 ‘쓰나미 피아노’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가 아니라 둔탁하고 쉰 것 같은 음이 난다. 대다수가 이 피아노는 이제 못 쓰겠다고 돌아섰을 텐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피아노 앞에 앉아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자른 나무를 엄청난 힘으로 누르고 잡아당겨 만든 피아노 소리가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을 받아 비로소 해방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최근에 그가 하는 작업은 그러한 것들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아 없어진 소리가 얼마나 많은가. 멸종된 동물들의 소리, 무한한 경쟁으로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웃음소리,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도시의 가장자리로 몰아내버린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러할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우리가 잘 듣지 않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환경파괴와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세계 곳곳의 환경파괴로 인한 각종 질병과 사회 문제에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확히 무엇이 위험한지는 잘 몰랐지만, 예술가로서 느낀 직감이었다. 환경은 스스로 나빠진 게 아니라 인간 활동과 연관돼 있고,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사카모토가 동일본대지진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슬프게 들린다 느꼈는데, 그 역시 그가 시대를 담은 음악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그는 촬영팀에게 종종 바흐를 연주하는 모습을 들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바흐를 닮은 곡을 꼭 연주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바흐의 곡이 어딘가 모를 우울함이 있는데, 당시 유럽의 끔찍했던 전염병 굶주림 억압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시대의 어려움에, 시대가 외면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카모토의 음악이 아름답고도 사무치게 슬픈 것은 바로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가을바람이 분다. 계절의 힘은 참 위대해서, 꺾일 것 같지 않았던 무서운 더위마저도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책임마저 같이 물릴 수는 없다. 이 무더웠던 여름을 나며 우리가 잃어버린 소리는 얼마나 많은가. 폭염에 속수무책 스러져야만 했던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이유도 모른 채 잃어야 했던 동물들과 식물들,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생명에 우리는 어떤 진혼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지속하는, 사라지지 않고 약해지지 않는 자연의 소리를 동경하고 그 소리를 닮아가고자 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시지가 참 깊게 울리는 가을이다. 다가오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초대되고 전시전도 열린다 하니, 그를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