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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칼럼]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기후변화 속 폭염 가뭄, 곡물가격 파동 가능성

식량자급률 낮은 한국…인구정책의 실패처럼 위험한 미래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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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한동안 눈에 밟히는 장면이 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맞은편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의 광경이 그랬다. 낱알이 영근 벼를 한 움큼씩 쥔 채 시위하는 농민들 모습이었다. 이들의 팻말에 적힌 문구는 ‘밥 한 공기 300원 쟁취’. 전국 각지 농민 3000여 명은 200원 하는 밥 한 공기 쌀값을 300원으로 올려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었다. 밥 한 공기 ‘재료 값’이 얼마 쯤인지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면구함과 함께 얼핏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에 4000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오버랩되면서, 그날 집회 풍경은 뭔가 처연하고 비현실적인 우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농민들이 주장하는 쌀 한 가마니(80㎏) 목표가격은 24만 원, 밥 한 공기(100g)로 따지면 300원이다. 목표가격제란 수확기 산지 쌀값이 미리 설정한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을 때, 그 차액 일부를 변동직불금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현행 쌀 목표가격은 18만8000원. 2013년 정한 가격이 여태껏 유지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래 13년 동안 목표가격이 인상된 건 단 한 차례뿐이다. “개 사료 값만도 못한 쌀값… 쌀값은 농민값이다.” 농민들의 아우성이다. “그동안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밥 한 공기 값을 200원에서 300원으로 올리는 게 부당한가.”

쌀값 논란의 본질을 보려면 당면한 식량 문제와 농업정책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48.9%(농림축산식품부 ‘2018 양정자료’)다. 2016년 50.8%보다 1.9%포인트 하락했다. 식량자급률이 50% 밑으로 떨어진 건 2014년 이후 3년 만이다. 국민이 소비하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으로 충당한다는 말이다. 범주를 좁혀서, 곡물자급률은 23.4%. 사상 최저치인 23.3%에 근접해 있다. 밀 콩 옥수수 보리 등 주요 곡물로 더 국한해 보면 자급률은 겨우 13% 선이다. 그런데 전 세계 국가의 평균 곡물자급률은 102.5%다. 호주가 275%로 가장 높고, 미국은 125%, 인구대국 중국도 97%를 넘는다.

통계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물론 산업화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우리 정부의 2022년 식량자급 목표치는 55.4%다. 지난 2월 내놓은 ‘2018~2022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 제시됐다. 기존 목표치 60%에서 오히려 4.6%포인트 낮춰 잡은 것이다. 정부 방침은 식량의 절반 정도는 어쨌든 다른 나라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국제곡물가격이 항상 안정돼 있다면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최근 상황은 돌변하고 있다.

우선 지구온난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세계적으로 농지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사막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캐나다 등지의 곡물생산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할 경우 한국이 받는 타격은 ‘오일쇼크’를 능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곡물가 폭등으로 인한 혼란은 2007~2008년 여실히 지켜본 바 있다. 불과 2년간 30여 국가가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겪었고, 20개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아이티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정권마저 붕괴됐다.

온난화가 미치는 국내 영향도 만만치 않다. 폭염·가뭄·폭우가 일상이 되는 기후 환경에서는 그나마 자급률이 높은 쌀을 비롯해 대부분 곡물의 생산은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대한 농업 대응은 몇 년 만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에다 경지면적과 GDP(국내총생산) 농업비중이 계속 축소되는 상황에서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건 간단치 않다. 10년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와 그 파괴력을 경험한 이후 각국은 식량안보를 자국 헌법이나 법률에 반영할 만큼 중시하고 있다. 또 국가 차원의 푸드 플랜(Food Plan)을 세워 단계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에 둔감한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위험 상황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 같다. 인구정책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식량문제 또한 언젠가는 당면할 우울한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품종 개발을 서두르고, 체계적인 농업지원 시스템도 갖춰 나가야 한다. 번연히 닥쳐올 미래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했던 파국적 결과를 지금 우리는 인구문제에서 확인하고 있다.

추석을 열흘여 앞두고 전국농민대회에서 제기된 쌀값 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식량안보 위기의 적나라한 단면일 수 있다. 어영부영하다 다시 10년쯤 뒤 어느 날 국제곡물가격 급등사태가 닥쳐오고 심각한 식량난을 맞는,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때 색 바랜 ‘밥 한 공기 300원 쟁취’ 사진이 비극의 묵시록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논설주간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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