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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과로사회에서 탈출 /김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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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09 19:10:34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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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관련된 일이나 필수적인 가사 활동 외에 소비하는 시간을 여가라고 한다. 여가를 뜻하는 레저(leisure)는 ‘허가된, 여유가 있는’의 뜻을 가진 라틴어 licere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레저문화를 즐긴다”고 하면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특정인들이나 누리는 것으로 생각해 왔고,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먼 나라 얘기였다. 최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CE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 2위로 조사됐다. 자료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심각한 ‘과로사회’다. 몇 년 전부터 ‘과로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마침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올해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는 주당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근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법으로 여가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외신들은 주 52시간 근무가 본격 시행된 것에 대해 ‘한국이 과로 사회에서 탈출했다’고 보도했고, 국내 언론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갖게 된 직장인들의 발길이 학원, 헬스장 같은 자기 관리를 위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법에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 많은 근로자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내용이며, 이러한 기사들을 이제 갓 시행한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결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얼마나 깨져 있으면, 이러한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되었을까? 제도의 개선으로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도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갈등의 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기성세대들이 과거 사회에 나와 내 일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 기본 인식이었다면, 지금 사회 초년생에게 결혼은 선택, 회사는 철저히 계약 관계라는 마인드가 자리하고 있다. 상사가 눈치 주면서 퇴근 시간을 늦추게 한다든지 자신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재촉하는 걸 부당하다고 여기는 세상이 된 거다.
흔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부른다. 병원도 의료기기 및 전산의 발전으로 많은 부분이 시스템화되었지만, 환자를 돌보는 일의 특성상 인력으로 대부분 운영된다. 결국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가장 큰 변화를 요구받는 곳은 병원이 아닐까? 현재로서는 큰 소용돌이라고 할 만큼의 혼란은 없다. 아마도 메르스 사태 이후에 다양한 인력 기준이 강화되면서 병원들이 이를 충족하기 위해 채용을 늘려왔고, 인턴과 전공의는 이미 전공의특별법 시행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의료 행위 하나하나의 과정과 결과가 환자의 건강과 직결되므로 늘 긴장감이 있는 곳이다. 법적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한 인력 충원만으로는 병원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과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과거 병원은 수직적인 문화가 팽배해 있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명령과 재촉만 할 뿐 피드백을 받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조직문화는 부족하였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과로사회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진행 중인 숙제이다. 두 나라는 국민이 성실하고,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둔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도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1999년경에 대부분 사업장까지 근무시간 단축제가 안착이 되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과로사를 사회적 문제로 놓고 활발하게 논의해 오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과로사방지법까지 제정되었다. 일본과의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근무시간 단축제 하나만으로 과로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여가가 중요하듯 타인의 시간도 존중해 주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하다.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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