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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축구감독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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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서독대표팀을 이끌고 독일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일군 제프 헤르베르거(1897~1977) 감독. 그는 ‘축구의 현인’으로 불린다. 축구에 관한 수많은 명언과 철학적 명제를 남겼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말이 “공은 둥글다”이다. 당시 세계 최강팀이던 헝가리와의 결승전 직전 이 말을 했다. 본선 1차전에서 서독이 이미 3-8로 무릎을 꿇은 바 있었으니, 헝가리 우세 분위기가 완연했다. 하지만 그는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간 계속된다”는 말로 선수들의 자신감을 일깨웠다. 실제 승부는 서독의 3-2 역전승으로 끝났다. “공은 둥글다”는 말은 이후 스포츠를 대표하는 명언이 됐다. 또 ‘인생 역전’의 희망을 불어넣는 삶의 격언으로 진화했다. 축구감독의 말 치고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축구감독의 품격을 보여준 사례도 많다. 1978년 개최국 아르헨티나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80) 감독의 용기 있는 행동은 백미다. 그는 시상식에서 호르헤 비델라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했다. 독재자 비델라 거부는 목숨을 건 것이나 다름없었다. “월드컵은 당신이 아니라 조국과 국민에게 바치는 것”이란 뜻을 분명히 했다. 이후 국민적 찬사 속에 메노티는 무사할 수 있었고, 반독재 열기가 높아져 결국 4년 후 비델라 정권은 무너졌다.

이처럼 축구감독의 말은 적잖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다. 큰 성과를 거둔 감독일수록 더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월드컵 16강 진출 직후 남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최근 2018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사상 첫 4강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꾸밈 없고 소탈한 말들이 ‘행복축구론’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박 감독은 그제 귀국 기자회견에서 연봉(3억 원) 인상을 주장하는 베트남 내 여론에 대해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무욕과 겸손의 축구인’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11월 동남아 축구선수권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축구 현인’ 헤르베르거 감독이 남긴 “경기의 끝은 곧 경기의 시작이다”라는 명언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어쩌면 박항서 감독이야말로 진짜 ‘베트남의 축구 현인’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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