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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평당 1억 원짜리 아파트, 그리고 ‘지상의 방 한 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02 18:57:54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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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 그 돈으로 30억짜리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하루 8시간 1년 중 300일을 꼬박 일하며 단돈 한 푼 쓰지 않고 144년간 고스란히 모아야 한다.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온 세상이 야단인데, 작은 6면체 콘크리트 덩어리를 소유하려면 입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1세기 하고도 절반이 걸린다.

2차 대전 후 공산주의 치하에서 궁핍과 억압 속에 놓인 폴란드인의 삶을 그려낸 소설 ‘제8요일’. “단둘이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하룻밤만이라도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작은 방 한 칸 가지는 게 주인공 두 연인의 간절한 꿈이다. 어찌해서 이 비극이 21세기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 땅에서 반복되는 것인가.


   
지난주 내 기억에 가장 강렬히 새겨진 건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시세가 평당 1억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였다. 전용면적 84㎡짜리가 29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는 거다. ‘1억, 1억이라….’ 나는 입속으로 여러 번 곱씹었다. 아무리 돈 가치가 떨어졌대도 우리네 서민이 쉽게 만져보기 어려운 돈 아닌가. 그런데, 전용면적 25평짜리 아파트값이 물경 30억 원에 가깝다는 거다.

‘가만있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8350원이랬지. 그 돈 받아 이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지?’하는 문득 생각이 스쳐 갔다. 하루 8시간, 휴일 빼고 1년 300일을 꼬박 일한다고 쳐서 단돈 한 푼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으면 144년 걸린다고 계산기가 가르쳐 준다.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렸다고 온 세상이 야단인데, 크지도 않은 6면체 콘크리트 덩어리를 소유하려면 입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1세기 하고도 절반이 걸린다니.

아무리 재주에 따라 돈을 버는 게 미덕인 자본주의 세상이라지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건가 싶어 우울한 심사를 떨치기 어려웠다. 글쎄,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란 게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란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도시에 사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아니 어쩌면 유일한 재산이 아파트 한 채이니까 집에 대한 유별난 애착을 모르지도 않는다. 불안한 노후를 버텨 줄 최후의 보험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거야 원. 살기 위해서 집이 필요한 건지, 집을 위해서 인생을 거는 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하기야 아파트 투기 광풍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도시 집중화가 본격화하고 도시인의 주거방식이 아파트로 바뀐 1970년대 이후 근 50년간 이 나라 최대의 뉴스거리 중 하나가 그 이야기 아니었나. 개발 열풍이 몰아칠 때 도시인이 재산을 증식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빚돈 얻어 부지런히 집을 늘리는 것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가장 부지런히 했던 짓이 녹지를 갉아 콘크리트 숲을 만든 일이 아니었던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이미 2016년에 전국 1937만 가구에 주택 수는 1988만 채로, 주택 보급률 102.6%가 달성됐다. 사람들이 서캐 몰리듯 바글거리는 서울도 96.3%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집 한 채 갖는 게 왜 우리네 가장 큰 화두여야 할까. 그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집을 여러 채 독점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전국기준 자가 보유율은 59.9%, 10가구 중 4가구가 무주택인 셈이다. 2010년의 60.3%보다 오히려 낮아진 거다. 빠끔한 땅만 있으면 그렇게 죽자사자 아파트를 지어댔는데도 집 가진 가구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거 아닌가.
역대 정권이 가장 골머리를 앓고서도 실패한 대표적인 정책 두 개만 꼽으라면 대입제도와 부동산 투기 억제책일 거다. 노무현 정권 때도 종부세를 도입했지만 결국은 실패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경기를 부양한다며 오히려 투기바람을 은근슬쩍 조장하지 않았던가. 요즘 다주택 소유를 규제한다니 서울에선 ‘똑똑한 놈 한 채를 잡자’는 바람이 일고 있다던가. 그 결과가 25평짜리 아파트값이 30억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올밖에.

하기야 집값과 임차료 상승은 우리나라의 문제만도 아닌 모양이다. 비싼 집세로 악명 높은 영국 런던이나 미국 대도시에선 방만 따로 쓰고 주방, 식당, 빨래방을 함께 쓰는 공동 주거가 젊은 직장인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템스강 운하에는 거주용 보트들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다고도 한다. 세계 최악의 주거난에 시달리는 홍콩엔 ‘맥난민’도 등장했다. 햄버거를 시켜놓고 깨끗한 화장실과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맥도날드 점포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의 부동산 투기 바람은 유별난 데가 있다. 아니, 한국 전체는 아니다. 요즘은 지방 도시는 집값이 떨어지고 거래가 바닥을 맴도는데 서울만 유독 투기 과열인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과 여의도 개발계획을 내놓았다가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들썩이자 화들짝 놀라 거둬들인 게 며칠 전이다. 부산 등 지방 도시는 사정이 전연 다르다. 부동산 거래절벽 해소를 위해 부산시가 국토교통부에 6개 지구를 ‘조정대상지역’에서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과는 일광면을 제외한 기장군만 풀렸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규제에 묶였다. 이거야 원, 흉년에 가난뱅이는 굶어 죽고 부자는 배 터져 죽는 꼴이랄까. 서울공화국의 또 다른 그림자가 여기에도 어른거리는 게 아닌가.

서울의 투기 과열을 지방 사람들이 손가락 빨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인 게 서울과 지방의 개발 격차가 심화할 거란 우려 말고도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집값이 뛰어오르면 방세도 당연히 오르게 돼 있지 않나. 서울에 애들 유학시킨 학부모들 등골이 덩달아 휘어지고 있으니.

집값을 안정시키자는 정책 수단도 백가쟁명이다. 세금을 더 올려 투기 차익을 거둬들이자, 시중에 돈이 너무 많으니 금리를 올리자, 그러지 말고 주택 공급물량을 늘리자 등등. 하지만 그게 별무효과라는 건 우리 모두 체감으로 알고 있다. 보유세를 대폭 올리면 노무현 정권 때처럼 집을 여러 채 가졌거나 비싼 집을 가진 사람의 저항이 엄청날 거다. 금리를 올리는 것도 간단치 않다. 가뜩이나 고용시장이 안 좋은 판에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목줄을 죄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많이 짓자? 그래 봐야 돈 있는 사람들이 싹쓸이를 할 거 아닌가. 하기야 그건 배부른 수도권 이야기고 지방에선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는 판국에.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신접살림을 차릴 소형 아파트 한 채 구할 전셋값이 없기 때문 아닌가. 기혼자 중 5명에 1명꼴로 주택비용 때문에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했다는 설문조사를 본 적도 있다. 전·월세 거주자들의 10명 중 3명 이상이 임대보증금이 올라 집을 줄이거나 집값이 싼 지역으로 이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글쎄, 지금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삶의 공간이지만 누구에게는 유용한 돈벌이 수단이다. 문득 서양의 어떤 소설이 떠오른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마레크 플라스코가 1956년 발표한 ‘제8요일’. 공원이나 극장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만 데이트를 하던 가난한 연인 피에트레크와 아그네시카는 둘만의 공간을 절실히 원한다. 피에트레크는 이렇게 한탄한다. “단둘이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하룻밤만이라도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은 드디어 로만이라는 사람의 집을 빌리기로 한다. 하지만 로만은 약속을 어기고 짙은 화장을 한 여인과 제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던 것. 피에트레크는 절규한다. “아, 우리를 벽으로 둘러싸 줄 조그만 공간도 구하지 못하는구나.” 계단을 내려오며 아그네시카는 이렇게 생각한다. “벽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면의 벽, 아니 삼면이라도 좋겠지? 그런 방이라도 없을까.”

2차 대전 후 공산주의 치하에서 궁핍과 억압 속에 놓인 폴란드인들의 삶을 그려낸 이 소설 속 연인들의 비원이 어찌해서 10대 경제대국이란 한국 땅에서 반복되는 것인지. 누구는 몇십 채를 소유하고, 한 채에 수십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하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집이 없어 결혼을 주저하고, 은퇴자는 집 한 채에 불안한 노후를 의탁해 전전긍긍하는 세상이 정상적일 리는 없다. 문제는 ‘부동산 널뛰기’를 잡을 맞춤형 정책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난다 긴다 하는 경제관료, 경제전문가도 답을 내놓지 못하니 답답할밖에. 그래도 어쩌겠나. 부동산값 폭등은 한국경제의 건전성을 좀 먹고, 국민의 삶을 왜곡시키는 주범이니 무슨 수를 써도 잡긴 잡아야 할 밖에.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비상한 각오와 노력을 주문하는 거다.

   
우리에게 집이란 게 무엇일까. 왜 우리에게 집은 행복을 가꾸는 공간이 아니라 ‘이익’과 ‘효율’이 지배하는 공간이 됐을까. ‘만일 여러분들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하는 식으로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겐 “십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하고 말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하고 소리친다’. 왜 우리는 행복한 집을 사랑하지 않고 ‘어린 왕자’의 어른들처럼 ‘삼성’이니, ‘현대’ 따위 건설회사의 브랜드를 사랑하게 됐을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오래된 노래를 떠올려 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집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이 왜곡된 투기 열풍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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