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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 /정훈

성공신화 주입식 교육, 무력한 꼭두각시 전락…아이가 행복 만끽할 때 우리사회 미래도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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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29 19:38:33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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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를 먹는 걸 싫어하고 거북해한다. 그런데 그 사실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일이고,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이기 때문에 받는 ‘보호’와 ‘관리’가 싫어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어른이 되어야지만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고, 이로써 자신의 자유 의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꿈같은 게 작용했으리라. 아이를 덜 성숙한 인간으로, 그리고 어른을 성숙한 인간으로 여기는 편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아이는 약자이고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관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부조리와 폭력의 근원 가운데 하나가 ‘차별’이다. 차별 심리는 대상을 삭제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고약한 병인(病因)이다. 하지만 인간 동류의 존재로서 아이는 조금 완화된 차별 심리의 사회적 관습과 제도로써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사회의 거시적 전망으로 선택되고 길러진다. 아이는 국가 경쟁력이나 ‘선진적’ 경제지표를 위한 든든한 토양이자 인적 자원으로 탈바꿈한다. 마냥 천덕꾸러기만 같았던 존재가 국가와 사회의 희망으로 좌표이동을 하는 것이다. 이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어차피 개인의 성장 과정은 공동체의 발전과 존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아이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아이는 그렇게 갈라진다. 얼른 나이를 먹어서 자유로운 의지와 행동으로 자신의 인격과 삶의 철학을 가꾸어나가고 싶은 아이가 있다. 그리고 얼른 나이를 먹어서 좋은 학교와 직장을 나와 남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아이가 있다. 이 두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부딪히게 되는 사회의 장벽이란 얼마나 큰 것일까. 한쪽은 온전한 자아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인간 세속적 구조 때문에 절망할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실적인 제약과 사회시스템의 부조리한 구조 때문에 절망할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이 꿈꾸며 바라는 현실은 나이를 먹을수록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 실존적인 자아와 사회적인 자아는 늘 미끄러지면서 충돌한다. 이 둘의 행복한 결합은 아이가 자라서 노인이 되어 병들고 죽을 때까지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신기루며 환상이다. 이를 유한한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이라 하자. 어찌 보면 이러한 한계상황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사회적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할수록 점점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아이가 행복한 사회의 미래는 밝다. 행복을 만끽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행복감을 준 토대와 분위기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행복할까. 부모와 학교에서 알게 모르게, 아니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성공 신화의 이데올로기에 전염되어 마치 꼭두각시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획일화되고 천편일률적인 사고 방식이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 간악한 어른들의 반면교사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아이들 사이의 따돌림을 넘어, 무자비한 폭력과 어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피의 복수극을 보고 듣는다. 이럴 때면 흔히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경쟁 심리나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적 욕망이 간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받곤 한다. 일면 타당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선택과 판단을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현명한 방식으로 습득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즉 본성과 인간성 및 사회적 개성을 조율하고 균형 잡게 하는 사회적 제도나 윤리가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이는 스스로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나이를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의 세계에 미리 종속되어버렸기 때문에, 어른들의 관심이나 교육 행위 자체가 더 침투할 수 없는 잉여의 잔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의 절망은 내면화되어 굳어진다.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나이 들어 어른이 되면 찬란하고 푸른 세상을 가꾸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연령대가 되었지만 늘 초조해하고 쉽사리 절망에 빠지거나 상처를 입는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이런 상태가 지워질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제는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와 ‘어른’이란 말이 만들어놓는 고약한 심리작용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일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요즘에는 아이를 위한 나라도 없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이고 노인이고를 떠나 언제쯤 ‘인간’을 위한 나라가 도래할 것인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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