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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산 앞바다 도해선(渡海船) 침몰사건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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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7 18: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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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6년 8월 5일. 부산 앞바다는 잔잔하면서도 음흉했다. 배가 뜰 수 있는 날씨였다. 동풍이 불긴 했으나 태풍의 낌새도 없었다. 부산포에서 출발한 도해선(渡海船)은 돛을 세워 대마도를 향해 나아갔다. 도해선에는 문위행(問慰行) 역관사 일행 103명이 승선해 있었다.

오륙도 앞을 지날 무렵, 갑자기 배가 요동쳤다. 일진광풍과 함께 높은 파도가 배를 덮쳤다. 배가 급격히 기울면서 돛폭이 찢어졌고,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졸간의 일이었다. 배가 뒤집힐 듯 계속 기울면서 승선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다에 떨어졌다. 40~50명이 나무 조각을 잡고 아등바등하다가 물속으로 잠겼다. 한마디로 궤패(潰敗, 무너져 패함)였다. 파도는 잔인했고 눈앞의 오륙도는 비정했다.

“사람 살려!” 외마디 비명이 바다에 떠다녔다. 그때 두모포(豆毛浦)의 어부 이원재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참상을 목격하고 다가가 구조 활동을 했다. 이원재는 사투 끝에 9명을 건져 올렸다. 수역관(首譯官) 현태익(玄泰翼)은 널빤지를 잡고 하루쯤을 버티다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승선자 103명 중 생존자는 9명, 사망자는 94명이었다. 호송하던 일본인 6명도 모두 숨졌다.

동래부사 강필리의 장계를 접한 조정은 충격 속에 사고 수습에 나선다. 당시 임금인 영조는 침통한 어조로 말한다. “인명에 무슨 귀천이 있겠으나, 죽은 자 가운데 품계에 이른 역관이 세 명이고, 그중 현태익과 현태형(玄泰衡)은 종형제간이라니 더욱 참혹하다. 모두 나랏일을 하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휼전(恤典)을 별도로 더 거행하고, 어버이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히 음식물을 주어 마음을 위로하라.”

영조는 일본인에 대해서도 긴히 언급한다. “저들과 우리가 교린하는 도리로 보아 은혜롭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 특별히 수왜처(守倭處)에 휼전을 주어서 나의 뜻을 보이고 그들의 처자에게 전해 주라.” 영조는 또 “해변에 단(壇)을 설치하고 특별히 제사를 지내주어 백여 인의 수중고혼의 넋을 위로하게 하라”고 엄중히 지시한다.

조정은 침몰 사고의 원인이 부실한 조선(造船)에 있다고 보고, 도해선을 제작·지도·감독한 실무자와 지휘 계통의 책임자를 귀양 조치하는 등 치죄토록 했다.

여기까지는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영조실록’에 전해지는 도해선 침몰 사건의 전말이다. 통신·교통이 미비한 상황에서도 사고 보고 및 수습, 책임자 처벌이 불과 보름 만에 이뤄졌다. 21세기 문명시대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1766년 도해선 침몰 사건은 역사 속에 파묻힌 사건이다. 도해선에 탄 문위행 역관사는 조선 정부가 대마도에 수시로 보낸 외교사절이다. 조선 정부는 총 54회의 문위행을 대마도에 파견하였다. 통신사행 12회보다 월등히 많은 횟수다.
도해선 침몰 사건은 1703년(숙종 29)에도 발생했다. 그해 2월 5일 정사 한천석 등 108명이 나눠 타고 갔던 선박 3척이 대마도 도착 직전에 침몰해 전원 사망했다. 일본 측은 1991년 상대마(上對馬)의 한국전망대 앞에 ‘역관순란지비’를 세워 순란자(殉難者)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는 2016년부터 이곳을 찾아 위령제를 지내왔다.

1766년 도해선 침몰 사건을 수면 위에 끌어올린 건 바로 초량왜관연구회의 열성 회원들이다. 초량왜관연구회는 도해선 침몰사건이 던져주는 역사·외교적 의미에 주목하고, ‘역관사 추모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풀리지 않는 한일 역사 갈등을 민간에서 성신(誠信)·교린(交隣) 정신으로 풀어보자는 취지다.

‘역관사 추모비’ 건립에 대한 공감대는 아직 약하다. 초량왜관연구회가 나섰다지만, 지자체나 학계가 동참하지 않으면 추진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건립 주체와 장소, 비용, 관리, 일본 측 협력도 관건이다. 과제가 많지만 의미 있는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지만, 양국이 공감하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 ‘역관사 추모비’는 과거 해원(解寃), 현재 추모, 미래 상생의 함의를 지닌다.

역사 콘텐츠를 요리하는 데 있어 일본은 늘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간다. 때론 진정성이 의심되지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한일 뱃길, 대한해협의 험난한 파도 속에는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역사 콘텐츠가 잠자고 있다. 그 속에 ‘잠들지 못하는’ 한일 관계사가 있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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