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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자폐증’에 빠진 우리 경제를 건져내려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26 18:50:47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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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정부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소비 확대-경기 진작 사이클로 이어지지 않고, 고용 확대를 위해 세금과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이 신문, 저 신문 칼럼을 다 읽어봐도 현상에 대한 비판만 무성할 뿐 딱 부러지는 대안이 없다.


지금쯤은 정부-국회-자본-노동-학계 및 사회단체 등이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근본적인 대타협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시적인 사탕발림 말고 각 세력이 한국사회의 장기 발전모델을 치열하게 토론해 합의의 틀을 만들어 보란 이야기다. 좀 더 대담하고 근본적인 방안, 제3의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득주도 성장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오복조르듯 이걸 폐기하라는 일부 보수언론의 떼쓰기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전도사 격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현실주의자로 알려진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이간시키는 데도 바쁘다. 야당도 이 대열에 끼어들어 ‘장하성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자본의 총공세가 시작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나는 한 놈만 골라서 팬다”는, 오래전에 나온 영화의 대사가 다시 유행하는 형국이다.

지금으로선 정부가 핀치에 몰려 있다. 체감하기에 가장 빠른 성장 효과가 고용인데, 그게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올 7월 취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친 게 방아쇠 노릇을 했다. 금융위기가 휩쓴 2010년 이래 가장 부진한 실적이라고. 그 많은 공적 자금을 퍼붓고도 결과가 이 꼴이냐는 소리가 쏟아질밖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바짝 긴장했다.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 문 대통령이다. 지난 5월 말 하위계층의 소득 감소가 “매우 아픈 지점”이라며 1차 반성문을 썼던 대통령은 2차 반성문을 써야 했다. 일주일 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좋은 일자리 늘리기를 국정의 중심에 놓고 재정과 정책을 운용해 왔지만, 고용상황이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자책하지 않았나. 경제 투톱인 김동연·장하성 두 사람에게 채찍도 날렸다.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 모두가 고용 상황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하라.”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고용 쇼크’의 주범으로 몰아가면서 장하성을 집중타격하고 있다. 그만 쫓아내면 경기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기라도 한다는 듯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국가주의’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정부가 경제를 포함해 민간의 영역에 일일이 간섭하니 삐걱거리지 않느냐는 거다. 까닭이야 어린애도 아는 일. 지방선거에서 입은 궤멸 수준의 타격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의 경제정책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나.

문제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대체할 정책 수단에 대한 논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거다. 경제논쟁이란 게 통계놀음이니 숫자를 들이대면 뭔가 객관적·가치중립적으로 포장하기 쉽지 않나.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라고 하면 공격받은 쪽이 되받아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신문, 저 신문 칼럼을 다 읽어봐도 현상에 대한 비판만 무성할 뿐 딱 부러지는 대안이 없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이론상 허구라면서도 그럼 이명박·박근혜 때처럼 대기업과 기득권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되돌아가자는 거냐, 그렇다면 그 후과인 ‘소득 양극화’는 또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엔 대답을 얼버무리고 마는 거다.

어쨌거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데에 청와대의 고민이 있을 터. 지방선거 전후로 80%를 오르내리다가 60% 선이 뚫렸다.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 2년 차 지지율과 비기면 아직은 높은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워낙 고공행진을 벌였던 터라 낙폭이 커 보이는 거다. 청와대는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는 하지만 초조할 거다. 대통령 지지율 하나로 적폐청산도, 남북대화도, 지방선거도 돌파해 왔으니.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개기는’ 사람들이 철밥통 관료들인데, 그들이 슬슬 청와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소리도 새 나온다.

경제란 건 유기체다. 모든 신경망이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사회경제적 심리까지 연결돼 있으니 인간의 생체와 흡사한 영역이 아닌가. 빈부 격차가 너무 커진다고 아우성을 쳐서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이번엔 지갑을 직접 여는 자영업자들이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고 거리로 나서는 곳이 바로 경제 영역이 아닌가. 그렇다고 절대강자인 대기업의 약육강식을 규제하지 않고 시장 자율에만 맡기면 세상이 정글이 돼 버리지 않나. 상반된 이해관계를 고깃덩이처럼 물고 으르렁거리는 ‘시장’이라는 이름의 야수를 조련해 우리에 집어넣는 게 어디 쉽겠나.

어쨌든 경제가 정부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나는 일부 보수언론의 호들갑만큼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진 않지만, 자칫하면 ‘자폐증’ 증상을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슬 생기긴 한다. 자폐증이란 타인과의 상호관계나 정서적인 유대감이 생기지 않고, 의사소통도 않으면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아동기 증후군이 아닌가. 최저임금을 올려도 소비 확대-경기 진작 사이클로 이어지지 않고, 고용 확대를 위해 세금과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2분기에는 소득 하위 20%대 상위 20%의 격차가 5.23배로 더 늘어났으니 정책 의도와는 정반대로 가는 ‘청개구리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고용이나 소득 양극화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성싶다. 전 세계에 걸쳐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건설·조선처럼 인력이 많이 필요한 장치산업이 퇴조하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이란 IT, 인공지능 산업은 자본집약형이지 인력집적형이 아니다. 게다가 자동화·온라인화는 또 얼마나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가. 정부도 ‘혁신성장’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하루아침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규모 고용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엔 지금쯤은 정부-국회-자본-노동-학계 및 사회단체 등이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근본적인 대타협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왕에도 노사정위원회가 있었고 정부가 압력을 가해 기업 총수들을 모아 투자발표회 따위를 열게 한 적도 있다. 그런 일시적인 사탕발림 말고 진짜로 포괄적인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해 보라는 거다. 각 세력이 한국사회의 장기 발전모델을 치열하게 토론해 합의의 틀을 만들어 보란 이야기다.

이를테면, 경제 여력을 따져 향후 몇 년까지는 임금을 얼마나 올린다는 것에 노동-자본이 합의를 보는 것. 물론 소상공인도 참여시켜야 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이런 선 이상으론 침범하지 않는다. 이렇고 이런 불공정 거래 관행은 철폐한다는 것도 합의의 대상이겠다. 기업은 어떤 분야에 투자를 얼마나 늘려 얼마만 한 고용 확대에 나서겠다, 고용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복지로 보호해야 하니 법인세를 포함해 세금을 향후 몇 년까지 어느 수준으로 올린다. 정부는 정책 차원에서 어떤, 어떤 지원책을 쓰겠다 등등.

백일몽 같은 이야긴가. 한물간 ‘스웨덴식 대타협’을 하자는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스웨덴은 1920년대와 대공황기에 파업의 파도를 거친 다음 사민당이 계급정당 노선을 버리고 대중정당으로 변신하면서 자본과 노동이 대타협에 성공하지 않았나. 산업 재건을 위한 국가 개입과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확대하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졌지 않았나.

1997년에도 8개 부문 노조와 12개의 사용자단체가 ‘노사협력과 협상 과정에 관한 새로운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목적은 스웨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임금 형성 규칙을 만드는 것. 노사가 산업 경쟁력과 수익성 향상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 사민당 정부는 노사 간의 자발적 논의와 협약이 노사관계의 장기적 안정에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노동 관련 법률, 노동시간, 임금 결정 방식 등을 노사 협상에 맡겼다.

우리로 말하자면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이렇게 가다간 물이 서서히 끓는 냄비 속에 갇힌 개구리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갖고 있지 않나. 정부는 내년에도 확대재정 기조로 나가겠다지만 세금을 퍼부어 인위적인 경기 부양이나 고용 확대에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악화일로인 고용절벽을 그냥 두거나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마당에 복지 정책의 뼈대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자칫 온 나라가 백가쟁명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런 시도라도 해봐야 한국경제의 자폐증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정권 바뀔 때마다 개혁을 외치다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다시 약육강식, 정글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짓을 무한 반복할 수는 없지 않나. “올 연말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자신 없는 약속만 내놓을 게 아니라 좀 더 대담하고 근본적인 방안, 제3의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그것도 아직 정부의 힘이 남아 있는 올해가 마지노선일 거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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