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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악의 두 얼굴 /정혜경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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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4 19:51:3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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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마음이 정해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특히 말기 암 병동에 가보면 다양한 임종의 모습을 보게 된다. 평생 천국에서만 지내다 평화롭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몇몇은 특별한 삶의 주인이 된다. 그들은 비록 가진 것 없이 살았지만 주어진 역경을 흔쾌히 수용하고 모멸의 순간 또한 성실한 일상으로 감내하여 아름다운 임종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로 삶을 재단하고, 심지어는 타인의 삶에 대한 개입과 처단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님비의 현장은 참혹하다. 이 세상 어디든 다 괜찮지만 내 집 앞마당에는 결단코 안 된다는 님비의 저변에는 사악한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아 어머니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이고도 대단히 흡족해한다.

자신만 아는 탐욕은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아동 93명에게 달걀 세 개로 끓인 계란탕을 주게도 하고, 썩은 식재료를 먹이기도 한다. 이들이 뉴스 속에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행세하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악한 마음에 면죄부를 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기심은 또한 사흘에 한 명씩 데이트 폭력으로 여성들을 사망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그만한 일로 죽을 줄은 몰랐다며 애인이란 자격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악은 언제나 손쉽고도 상냥하게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악이 훨씬 편안하고 너그럽게도 보인다. 독일의 철학자인 아도르노도 그랬다. 책임 소재의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악인은 아량을 내세워 침묵하는 이들을 사랑하고, 바른말을 하는 이에 대해 증오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악인은 악행을 반성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었다면서 스스로가 행한 악행에 대해 합리화한다. 그래서 악인에게 동조하는 이가 훨씬 많다. 삼성이 갖가지 범죄를 은폐하고 있을 때도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일등 재벌이라며 처벌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십만 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결코 줄이지 않는다. 악은 성찰과 고뇌와 같은 엄격한 태도보다는 그런 사유의 시간을 원천적으로 닫아버리고, 문제의 본질마저도 은폐해버리는 화해를 선택한다. 그래서 그 어떤 저항도 없이 당장의 평화스러운 야합에 훨씬 친근하다. 이와 반대로 악을 선택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고뇌로 인해 불친절해 보이고 그래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제 치하에서도 그랬다. 내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라를 강탈한 도둑의 앞잡이가 되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는 자신의 목숨도, 가족의 안위도 버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악인은 살자니 다른 방법은 없었다며 양심을 버렸고, 이웃의 목숨과 재산까지도 빼앗았다. 그 덕분에 자자손손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돈을 가져야 행세하고 그러자면 사람의 도리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된다는 변명으로 탐욕만을 키운다.

30년 전 관통상을 입은 응급환자였던 큰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려 했을 때 스무 명이 넘는 기사가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시트 버린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배웠다. 그러나 아이에게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차를 거의 운행하지 않았고, 지금도 시간만 허락하면 걷는다. 그 덕분에 유별나다고, 그래 봐야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며 한심하다는 소리를 늘 듣는다.

타인을 부당하게 옥죄는 악인은 대단히 긍정적인 욕구와 당당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악은 선의 얼굴로 위장하며 번식한다. 자식을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부모들이 비극을 양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는 종착역이 아니라 간이역에 불과한데도 다 큰 자식들 문제에 사랑이란 미명으로 사사건건 개입하니 젊은이들의 결혼이 힘든 것이다. 파혼이나 이혼의 사례에는 부모로부터 잘못 학습 받은 자식들이 재화로 거래를 하려 했거나 세계관의 미성숙으로 인해 야기된 파탄이 많다. 결혼은 재화로도 유유상종이어야 한다는 통념은 비극적이다. 자식을 이기지 못해, 가난한 사위를 들이기는 했으나 마치 미래를 보는 예언자처럼 통곡하는 부자를 본 적이 있다. 부자의 소명이 나누는 것임을 안다면 그들의 자식이 불행할 이유가 없다.

악이 가진 두 얼굴이 삶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상은 마음의 무늬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이 단순한 이치를 우리는 너무 자주 망각한다. 타들어 가는 지구가 그러하듯 파국을 향해 치닫는 광인처럼 브레이크 없이 질주의 쾌락에만 매달리다 만든 이 지구촌의 재앙에 대해 이제라도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동의대 기초교양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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