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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숙의민주주의? ‘공론화위원회’가 만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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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12 20:26:51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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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놀이패도 아니고 인사권이니 예산권이니 좋은 건 꼬박꼬박 챙기면서 골치 아픈 건 국민 몇백 명 모아 결정을 떠넘긴다? 그럴 바에야 대통령은 왜 뽑고, 시장·도지사는 왜 뽑나. 그냥 컴퓨터를 돌려 무작위로 국민대표 몇백 명 뽑아 죄다 맡기지.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공론화위원회에 참가한 국민에게 책임을 묻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부산시에도 한마디. 오페라하우스니, BRT니, 기장 해수담수화니 공론화 방식을 도입해 결정하겠다는데 위험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 누가 찬반 논리를 적절하고 균형 있게 제공할 것이며, 시민참여단은 또 어떻게 구성할 건가. (…) 공청회든, 설명회든 여론은 응당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결정은 당신들이 해라.


   
문재인 정부 들어서 유령(?)이 횡행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라는 것 말이다.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거나 결정하기 까다로운 국정 어젠다가 있으면 이 공론화위원회란 걸 만들면 만사형통인 거다. 쉽게 말해 이래도, 저래도 정부가 욕먹을 만한 일일랑 민간에게 떠넘겨 결정하게 한다는 거다. ‘숙의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개념까지 얹어놓아 뭔가 민주주의의 신기원을 연 듯한 느낌까지 연출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중앙정부가 이러니 지방정부도 그대로 흉내 낸다. 광주에선 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이 쟁점이 된 모양인데 광주시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한다고 한다. 경북 군위군은 아예 새 시장의 공약 전반을 논의하는 공론화위원회를 만든다고 나섰다고.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북항에 짓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된 오페라하우스나 전임시장 때 추진했던 BRT(간선급행버스체계)의 철폐 여부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서 결정한다고 한다. 나아가 기장 해수담수화 등 갈등을 빚고 있는 여러 현안에도 이 방식을 가동할 모양이다.

‘공론화 방식’이란 건 찬반 여론이 나뉘어서 정부나 행정기관이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기가 난처할 때 국민, 또는 주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거다. 얼핏 매우 민주적이고 탈권위주의적 의사결정 방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의사결정 방식의 이론적 배경은 ‘숙의민주주의’라는 낯선 개념이다.

‘숙의민주주의’라는 건 영어 ‘deliberative democracy’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는데 ‘deliberative’는 ‘토의하는’이란 뜻이다. ‘심의민주주의(discursive democracy)’라고도 부른다나.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조셉 비세트란 사람이 1980년 쓴 ‘숙의민주주의 : 공화 정부에서 다수 원리’란 책에 처음 등장했다고 나와 있다. 어떤 사안을 단순히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안이 가진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깊이 있고 다양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서 최선의 결론을 찾아낸다는 뜻이겠다.

다르게 말하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절충한 것이라고나 할까. 모든 사안을 일일이 구성원들에게 찬반을 묻기는 어려우니 표준적·평균적 대표성을 가진 일반인들을 일종의 표본 집단으로 선발해 그들에게 전문가들의 다양한, 혹은 엇갈리는 견해를 들려준 다음 서로 토의하게 해서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거다. 그렇게 보면 ‘숙의민주주의’의 원조는 미국 사법체계의 핵심인 ‘배심원제도’랄까.
그런데, 내 생각엔 이 숙의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매우 어정쩡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모든 국사를 일일이 국민투표로 결정하기 어려우니 대통령을 뽑아 국민 주권을 위임하는 게 ‘대통령책임제’다. 대통령이 임기 동안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정치적·행정적 실권을 쥐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하라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거 아닌가. 지방정부도 마찬가지. 권한 범위 안에서 책임을 지고 소신대로 행정을 펼치라고 그 비싼 비용을 써 가며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 게 아닌가.

무슨 꽃놀이패도 아니고 인사권이니 예산권이니 좋은 건 꼬박꼬박 챙기면서 골치 아픈 건 국민 몇백 명 모아 결정을 떠넘긴다? 그럴 바에야 대통령은 왜 뽑고, 시장·도지사는 왜 뽑나. 그냥 컴퓨터를 돌려 무작위로 국민대표 몇백 명 뽑아 죄다 맡기지.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공론화위원회에 참가한 국민에게 책임을 묻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지난해 논란이 됐던 ‘신고리5·6호기’ 문제를 한번 되짚어 보라.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 정권이 이미 착공한 신고리5·6호기를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돌출한 거다. 공사를 걷어치우자니 이미 들인 돈 1조6000억 원을 내버려야 할 판이고, 그대로 진행하자니 대선 공약과 충돌한다. 그래서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켜 놓고 여론을 묻자고 나온 거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제반 절차를 맡겨 시민참여단 471명을 모았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나온 게 ‘기왕에 짓고 있던 신고리 5·6호기는 공사를 재개하되 신규 원전은 백지화하는 등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아니었던가. 공약대로 원전을 폐기하든지, 아니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든지 무릇 정책이란 건 메시지가 명확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도 원전 공사는 공사대로 하면서 앞으로는 백지화하겠다는 앞뒤 안 맞는 소리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거다. 그래놓고선 청와대는 숙의민주주의의 승리라며 “감동적인 과정이었다”고 자화자찬했으니 이런 걸 일러 ‘똥 싸놓고 매화타령한다’는 거다.

얼마 전에 나온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더 절창(?)이었다. 지난해 8월 교육부가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 방침을 백지화하고, 대입 개편 시기를 2022학년도로 미루면서 시민 공론에 맡기겠다고 했을 때부터 직무 유기가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터다. 어쨌거나 교육부에서 권한을 넘겨받은 국가교육회의는 대입개편 특별위원회와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순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4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하나를 골라 달라고 구성한 시민참여단 490명도 의견이 갈렸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가 없어 ‘수능 전형을 45% 이상으로 확대하라’와 ‘수능 절대평가를 확대하라’는 상충된 2개의 안을 교육부에 되돌려 주고 말았던 거다.

글쎄, 이런 결론이 나올 줄 교육부는 몰랐을까. 대입제도 개편은 학부모·전교조와 교총·사교육 기업 등이 백가쟁명인 예민하기 짝이 없는 현안이다. 일반 국민을 모아놓으면 의견이 한데 모일 것이라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거다. 아닌 줄 알고서도 모았다면 교활했거나. 결국 수능 반영률을 늘린다는, 사실상 현상 유지로 귀착됐다. 시간만 낭비하고 돌고 돌아 원점 회귀한 꼴이 돼버린 거다. 그래서 이번에 낸 결론에 교육 관계자들이 다들 승복하나? 그럴 바에야 왜 그 난리를 쳤는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찬반양론이 극명해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는 죄다 이렇게 공론화위원회니 뭐니 만들어 면피할 심산인가. 그래서 정부는 뒷짐만 질 작정인가. 말 난 김에 묻겠다. 시민참여단은 도대체 누가 뽑는 건가? 그 사람들이 국민 총의를 대변한다는 논리는 어떻게 해서 성립하나? 대통령이나 시장·도지사,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투표로 그들에게 주권을 위임했으니 권력 집행의 정당성이 있다. 그런데,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고, 게다가 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국민참여단이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고 어떻게 의제할 수 있나. 그 400~500명이 중요한 국정 현안을 결정하면 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가? 나는 이건 본질적으로 국민 5000만 명 중에서 겨우 500명을 샘플 삼은 여론조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나라를 통치하는 계급은 고도로 훈련되고 윤리적인 철학자들이어야 한다면서 ‘철인왕(哲人王)’ 개념을 내세우긴 했다. 맹자도 통치자의 인격과 덕성에 의한 평화적이고 순리적인 통치인 ‘왕도정치’를 주창하긴 했다. 하지만 장삼이사 몇백 명이 철인이나 요순임금도 아니지 않나. 대의민주주의는 허술하긴 해도, 수백 년 동안 인류가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낸 제도가 아닌가. ‘숙의민주주의’니 뭐니,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들고 와서 국정을 실험해도 좋을 만큼 우리가 한가한가.

   
부산시에도 한마디. 오페라하우스니, BRT니, 기장 해수담수화니 공론화 방식을 도입해 결정하겠다는데 위험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 누가 찬반 논리를 적절하고 균형 있게 제공할 것이며, 시민참여단은 또 어떻게 구성할 건가. 어떤 결론이 나온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들이 승복할지도 의문이다. 공청회든, 설명회든 여론은 응당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결정은 당신들이 해라. 시민에게 정책 결정까지 떠넘기지 말고 시장과 공무원들이 소신껏 결정하고 집행하라는 거다. 그래서 그 결과를 놓고 다음 선거에서 책임지면 된다. 그게 행정의 채를 잡은 사람들의 도리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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