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남극 대륙의 라르스 빙붕(氷棚) 북쪽 끝 상공을 비행 중이던 아르헨티나 국립남극연구소 과학자들은 기이한 장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대한 대륙을 덮고 있는 300m 두께의 얼음이 길게 두 쪽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보여서다. 지구의 기온 상승 탓에 남극 만년빙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아마 2만 년 만에 처음이다. 지구온난화가 지금 상태로 진행되면 남극 북부 빙붕이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이들은 경고했다.
그럼에도 지구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는 계속 증가세다. 얼마 전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의 기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구 지표면 온도는 1981~2010년 평균치보다 1.6도나 높았다. 북극 방하는 지난 38년간 연속 줄었는데, 그간 유실된 빙하 총량은 평균 빙하 높이에서 22m씩 떨어져 나간 것과 맞먹는다. 또 지구 평균 해수면은 1993년에 비해 7.7㎝ 높아졌다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요즘 지구촌 곳곳이 살인적인 폭염에 난리다. 40도 안팎의 기온 영향으로 온열질환 사망과 각종 사건·사고, 농작물·가축·어류 폐사 등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유럽 발트해 국가들은 유독성 조류 증가로 해변 수영을 금지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올여름 전국 기상관측소 95곳 중 60% 가량이 역대 최고기온을 갈아치웠다. 폭염 역사를 새롭게 쓴 셈이다. 열대야도 모자라 초열대야(밤 사이 최저기온이 30도 이상 유지)까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심해질 거라는 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이를 부각하며 “세계가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이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현재 배출량이 되레 늘었다는 점에서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031~2080년 폭염 사망자가 급증할 거라는 과학전문지의 연구보고서도 얼마 전 나왔다. 20개국 412개 지역을 분석한 결과로, 필리핀의 경우 사망자가 1971~2020년보다 무려 12배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다. 물론 가상 시나리오이지만,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면 인간은 적응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변화가 적응을 앞지르면 결국 재앙이 된다. 지구온난화와 살인적인 폭염은 그에 대한 경고나 다름 없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