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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이 힘겨운 여름, 배달청년과 군수님의 1인 시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05 19:07:59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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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속 팔열지옥이 구현된 것 같은 올여름 폭염. 2030년대엔 더 뜨거워진다하니 나라도 걱정, 필자도 걱정이다. 이 와중에 ‘폭염수당 100원’ 달라며 1인 시위하는 배달청년을 보자니 가슴이 쓰리다. 존중받을 권리, 인간의 기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또 한편에선 부산시장에게 부군수 임용권을 돌려달라며 매주 하루 1인 시위하는 군수가 있다. 시간을 두고 협의 거쳐도 될 일인데 괜한 권한 다툼으로 보여 눈살 찌푸려진다. 그 시간에 취약계층을 위한 땀을 더 흘리시면 좋으련만.


폭염이란 표현이 진부해졌을 정도로 온 세상이 끓고 있다. 한반도가 지금 화열지옥이 돼버린 형국이다. 며칠 전에는 최고기온이 연일 경신되더니 엊그제는 강원도 홍천이 섭씨 41도를 기록했다던가. 지금 내가 머무는 강원도 원주 외곽의 시골 마을은 도시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한낮엔 찌는 듯하다.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햇살이 창날 같다. 텃밭의 옥수수, 고추, 배추도 생기를 잃고 축 늘어졌다. 한증막 같은 방에 앉아 있다가 엉덩이에 땀이 차여 견디지 못할 지경이면 찬물을 뒤집어 써보지만 그때뿐이다. 어쩌다 에어컨이 켜진 도서관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하고 보면, 에어컨이란 게 이기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다. 열기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외부로 강제 배출하는 기계 아닌가. 에어컨이 늘어날수록 대기 온도가 높아지고, 그래서 다시 에어컨을 사들이면 그만큼 기온이 또 올라가는 악순환을 일으키는 거다. 하지만 워낙 날씨가 더우니 켜지 않을 도리도 없다.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나. 그나마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에 사는 홀몸 어르신들은 털털거리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이 무더운 여름을 나야 한다니 걱정이다.

이럴 때 절로 연상되는 글귀가 두보의 ‘조추고열(早秋高熱)’이란 한시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란 유명한 구절 때문에 자주 들먹여지곤 한다. ‘관복을 졸라매니 미칠 지경이라 외마디 소리라도 치고 싶은데, 서류는 어찌하여 이리도 급하게 밀려드나. 남쪽 골짜기에 걸친 푸른 솔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맨발로 두꺼운 얼음을 밟아 볼까 생각한다’. 실내온도 제한 때문에 에어컨도 마음 놓고 켜지 못하는 공무원 제위께서는 이 시를 위안으로 삼으시라.

하고 보면, 옛사람들은 ‘뜨거움’을 가장 큰 고통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불경에서도 죄지은 자가 죽어 가는 곳을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 하지 않나. 그중에서 초열지옥은 오계(五戒)를 깨뜨리고 그릇된 견해를 일으킨 죄인이 죽어서 가는 곳. 뜨거운 철판 위에서 달궈진 쇠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다는데, 평생 글 써서 먹고사느라 구업(口業)을 짓는 나 같은 자들의 지옥이 아닌가. 갑자기 으스스 한기가 돈다. 하기야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도 아홉 층의 지옥이 있는데 대부분 뜨거움의 형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아차차. 더위 타령이 너무 늘어졌다. 올해 들어 온열 질환자가 3000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35명에 가깝다고 한다. 이게 다 온실가스 배출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폭염이 더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30년대엔 섭씨 4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름철의 일상적인 기온이 된다는 거다. 여름도 5월에 시작돼 9월이 넘어서야 끝난다니 봄, 가을이 사라질 판이다. 불경에서 말하는 팔열지옥이 이승에서 구현되는 셈이니 끔찍하지 않나.

요즘 더위에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건설현장 등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이다. 지난달엔 경북에서 풀을 베던 노동자와 충북에서 담뱃잎을 수확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사업엔 한낮에 작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지만, 민간의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이런 와중에 어떤 젊은이의 ‘1인 시위’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햄버거 배달 청년의 이야기다. 하루에 20~25건 배달하는데 건당 배달료로 400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냥 걸어 다녀도 숨이 턱턱 막히는 판에 헬멧을 쓰고 종일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자면 땀이 비 오듯 하고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노래진다는 거다. 눈, 비 올 때는 안전수당이라 해서 건당 100원을 더 준다는데, 요즘 같은 폭염에도 그걸 달라는 게 시위의 이유였다. 글쎄, 100원 더 달라고 피켓 들고 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자니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 거다.

폭염이 한반도를 덮치면서 정부가 할 일이 많아졌다. 우선은 사회적 약자들의 힘겨운 여름나기를 제도적, 체계적으로 챙겨야 하겠다. 쪽방 어르신, 빈곤층 가정, 소년소녀 가장들은 물론 옥외 노동자도 챙겨야 하겠고, 더위로 인한 가축 폐사, 온열성 전염병의 예방에도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그러자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에 피해를 주는 ‘재난’에 폭염과 혹한이 추가되도록 관련법부터 손질해야 하지 않을까.

연전에 타계한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대목이 문득 떠오른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더위라는 자연현상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미움받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리 없다. 폭염이라는 재난 앞에 자기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속수무책 고통당하는 사람을 놔두고 복지를 논할 수도 없다. 그렇게 보면 ‘쾌적한 여름 나기’도 기본 인권의 하나가 아닐까.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도 더할 일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파리기후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협력이 난관에 부닥쳐 있긴 하다. 그러나 후손에게 이런 열탕 같은 지구를 넘겨줄 수는 없지 않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일본, 중국, 북한 등 인접국과의 협의부터 나서 장기적인 대안 마련에 나설 일이다.

아, 말 난 김에 한마디 더. 수수료 100원을 올려달라는 배달 청년의 1인 시위에 문득 또 다른 1인 시위가 오버랩된다. 요즘 매주 화요일이면 부산시청에서 기장 군수님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지방자치법상 군수에게 주어진 부군수 임용권을 내놓으라 한다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9년부터 부산시와 자치구·군 사이에 인사교류 협약 형식으로 부산시의 고위 공무원을 부구청장이나 부군수로 내보내는 대신 자치구·군의 공무원을 부산시로 받아들여 인사 적체의 숨통을 틔워온 모양이다.

그런데 오규석 기장 군수가 느닷없이 권한을 돌려달라고 부득부득 졸라대니 부산시가 난감한 모양이다. 기장군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다른 15개 구에도 임용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그렇게 되면 20년 계속된 인사체계에 혼란을 불러온다는 거다. 내 생각엔 부산시에서 잔뼈가 굵은 간부가 기초지자체로 옮겨가 경험을 보태주고 시와의 윤활유 역할을 해줘도 나쁠 건 없을 것 같긴 하다. 구·군 공무원들에게도 큰 곳에서 일해 볼 기회를 줘도 될 것 같고….

어쨌거나 군수가 상급관청에 와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는 없다. 군수가 해고 노동자나 시민단체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런 문제일랑 서로 간에 시간을 두고 의논성 있게 해결해도 될 문제가 아닌가. 온몸이 땀투성이가 돼 수수료 100원 올려달라는 청년이 있는 판에 행정을 책임진 군수가 자기네끼리 권한 다툼에 데모나 벌여서야 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눈총이나 살밖에. 이 염천에 데모하느라 땀 흘리지 말고 관내 취약계층을 돌보면서 땀 흘리는 게 훨씬 더 보람 있지 않을까. 보고 있는 내가 더 더워서 하는 소리다.

어쨌거나, 언젠가는 더위가 물러가긴 하겠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리며 다들 잘 버텨내 청량한 가을을 맞았으면 좋겠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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