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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부산에 누워 있는 에펠탑이 있습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26 19:08:3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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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는 어떤 조건을 가졌다고 해도 그 자리는 항상 국토의 ‘끝’이다. 중심에 벗어나 있는 ‘끝’은 세상이 주는 여러 혜택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지만, ‘종점의 경제학’이란 말이 있듯 사실 ‘끝’이 가진 장점과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항구는 땅으로는 끝점이지만 넓은 바다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부산은 항구다’라는 명제가 있다. 부산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힘의 원천은 명제 속 항구에서 나온다. 항구는 항상 살아 움직인다. 바다라는 자연 자체가 매일매일 달리 변하고, 이름 모를 수많은 배가 오가며, 여러 목적을 가진 사람이 모여들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재화가 움직이는 곳이 항구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곳임에도 우린 항구를 물류시설이나 수산지원시설이 몰려 있는 하드웨어로만 볼 때가 많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에 이런 고착된 발상은 이제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언젠가부터 나의 관심은 항구시설 중 하나인 방파제에 집중되어 있다. 방파제는 배들과 항구를 보호하는 고유 기능을 가진 확실한 하드웨어인데, 어떻게 하드웨어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

감만 방파제, 남항 방파제, 청사포 방파제. 가끔씩 찾는 방파제들이다. 근처에 갈 때면 일부러 그곳을 걸어본다. 우린 늘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방파제에서는 항상 보는 바다가 아닌 새로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뭍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등대가 있는 끝점에 이르면 나는 바다 위에 서 있게 된다. 바다에서 항구와 도시를 볼 수 있고 시점(時點)이 변화함으로 생각의 전환을 이끄는 곳이 바로 방파제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은 이것이 진정 항구도시의 매력이니 묻혀 있던 감성까지 들춰내곤 한다.

항구도시를 가장 항구답게 바라볼 수 있는 방파제는 항구도시의 흥미진진한 누운 전망대다. 부산 기장 월내의 길천 방파제에서부터 가덕도의 대항 방파제까지 펼쳐진 방파제를 세어보니 33개소나 된다. 이름 없는 것들까지 합치면 40개소는 족히 될 듯싶다. 그러고 보니 걸을 수 있는 영도다리나 남항대교, 수영2교 같은 교량들도 방파제를 닮은 누워 있는 전망대다. 배경을 이루는 산들과 높낮이를 달리하는 오밀조밀한 집들, 역광에 내비친 반짝이는 물결과 파도 소리, 바다와 연결된 파란 하늘과 조각구름들, 그리고 방파제와 도시 사이를 연결하며 오가는 배들과 갈매기들을 보노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항구도시에 살고 있는 특혜에 감사하곤 한다.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한 도시인가.

방파제에 설 때면 나는 파리의 에펠탑을 상상하곤 한다. 1889년 만국박람회(요즘의 등록엑스포)를 개최하기 위해 세운 에펠탑. 전통의 도시 파리에 괴물 같은 철탑이 웬 말이냐며 건설을 그리도 반대하던 사람들이 에펠탑에 올라가 파리를 내려다본 순간 거의 똑같이 내뱉었던 말은 “파리가 이렇게 아름답구나~”라는 감탄사였다. 그래서 ‘도시경관’이란 용어가 등장했고 도시풍경도 관리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던 에펠탑!

부산에는 또 하나의 누워 있는 에펠탑이 있다. 길이가 무려 30㎞가 넘는 산복도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전망대라 불러도 될 듯싶다. 고개를 넘을 때의 멋짐과 길을 따라갈 때의 절묘함은 물론, 계단 길에 걸터앉아 만나는 소소한 감동마저도 내 맘대로 느낄 수 있으니 산복도로는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초량이나 중앙동에서 쭉 올라간 산복도로나 봉래산 자락의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의 모습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일출과 석양 때가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고, 또 야경은 얼마나 특별한지.

바다와 강을 낀 도시들은 야경이 아름답다. 왜일까? 야경이 아름다운 전 세계의 도시들은 모두 바닷가와 강변에 자리하고 높고 낮은 산을 배경으로 한다. 밤이 되면 산과 바다는 넓게 깜깜해지고, 강은 길게 어두워져 밝은 도시의 불빛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부산의 밤 문화를 바꾸어 볼 도전의 때가 된 것 같다. 원생의 자연과 지난 삶의 여정들이 남겨 놓은 부산의 특별한 전망대에서 새로운 부산의 밤 문화를 즐길 시간이 된 것이다. 특별한 밤 여행을 넘어, “부산에 밤마실 가자~”라는 말이 당연한 상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하나 더! 밤배를 타는 일도 이제 부산의 일상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부산이 가진 누워 있는 에펠탑과 연결된 고민이 있다.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조망점이 어디인지 또 어떻게 그 풍경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망점에서 보이는 조망대상(풍경)이 점차 본연의 색깔을 잃고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해결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심각해 보인다. 개발이익을 위한 경제 논리가 우선되며 바다 가리기, 지형 무시하기, 주변 고려 안 하기 등 독불장군식의 개발이 성행하며 점차 부산의 풍경이 그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재)개발이 필요 없다는 얘기이거나 부산은 무조건 낮게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풍경 조건에 맞는 개발을 택해야 하고, 집중과 선택이 섬세하게 고려된 부산만의 개발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 논제는 결국 부산이 가져야 할 ‘차별성’ 문제로 직결된다. 부산의 항구만큼 강한 에너지를 가진 항구가 우리나라 어디에 있는가. 유수한 외국 항구들을 둘러봐도 부산이 가진 차별적 경쟁력은 충분해 보인다. 남과 구분되는 이 차별성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부산만의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높은 아파트와 건물 짓기에만 급급하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는 자칫 부산만의 것에 대한 판단마저 흐리게 하여 결국 부산 경제를 위해 급하게 선택한 일들이 더 큰 경제적 후광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결국 ‘경쟁력 없음’으로 전락하게 할지 모른다.

창의적인 인문학적 발상을 방파제와 교량, 그리고 산복도로에 입혀보자. 바뀔 것이다. 부산을 바라보는 시점이 바뀌면 부산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등장할 것이고, 나아가 미래부산에 대한 혁신의 전환점도 생길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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