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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 세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22 19:05:51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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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어렵긴 매한가지이지만 일반 식당 주인들에게 건물주 정도가 ‘갑’이라면, 편의점은 건물주와 프랜차이즈 본사란 두 곳의 ‘갑’을 모시는 판이어서 최저임금 인상의 체감지수가 더 높기 때문일 터다.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니 ‘알바생’을 쓰지 않을 수도 없잖은가. 일부에선 ‘최저임금 전쟁’의 피아가 잘못 나뉘었다는 비판의 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어쨌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기적인 지표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거시적인 청사진을 그려가며 그 단계에 걸맞은 중장기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내는 일일 터다. 대통령과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일이다. (…) 경제를 실험실의 생쥐 다루듯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해선 세상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열흘가량 ‘최저임금 인상 폭’을 놓고 온 나라가 홍역 같은 후폭풍에 휩싸였던 터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진통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정한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노동계는 상승 폭이 적다고 불만이었고, 경영자들은 가뜩이나 힘든 판에 두 해 연속 두 자릿수로 올리면 어떡하느냐고 혀를 찼다.

편의점주를 중심으로 한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경제 현장의 최말단부에서 직접 지갑을 열어 임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반발을 이해할 만도 했다. 그 여파로 핀치에 몰린 건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내려앉았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선 61.7%가 나왔다. 80% 선을 오르내리다가 최저임금 논란 이후 급락했으니 정부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특히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극심한 데 따른 원인 분석과 해법도 백가쟁명이다. 형편이 어렵긴 매한가지이지만 일반 식당 주인들에게 건물주 정도가 ‘갑’이라면, 편의점은 건물주와 프랜차이즈 본사란 두 곳의 ‘갑’을 모시는 판이어서 최저임금 인상의 체감지수가 더 높기 때문일 터다.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니 ‘알바생’을 쓰지 않을 수도 없잖은가. 일부에선 ‘최저임금 전쟁’의 피아가 잘못 나뉘었다는 비판의 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착취’의 본산인데, ‘을’과 ‘병’인 소자영업자와 알바생끼리의 싸움이 돼 버렸다는 거다.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형국이다.

고리대금업자처럼 온갖 명목으로 고율의 수수료를 떼 가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걸핏하면 임차료를 다락같이 올리는 건물주와 싸울 생각은 않고 왜 하필 알바생들의 임금 올리는 걸 반대하느냐는, 편의점주를 향한 은근한 비난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만 일방적으로 나무라는 것도 무책임하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는 고용 관계가 아닌 자발적(?)인 계약관계인 데다 계약 방식도 천차만별이어서 ‘노동운동’ 방식의 단체 행동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건물주와도 결국 1 대 1 개별적 계약관계이니 임대료가 비싸다고 항의라도 했다가 점포 비우고 나가라면 무력한 그들이 또 어떡하겠는가. 얼마 전 서울의 한 족발집 주인처럼 나가라는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보면, ‘을’끼리의 내전을 유발한 책임을 물을 곳은 결국은 정부일 수밖에 없겠다. 공정거래법이건, 가맹사업법이건, 임대차보호법이건 손을 봐가면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했지 않느냐는 거다. 지금 관련 법안이 수십 개씩이나 국회에 계류된 채 낮잠을 자고 있다는데 국회의원들은 도무지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정부는 왜 또 국회에 꿀 먹은 벙어리일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편의점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란 거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수수료 수익을 늘리려고 장사가 되든 말든 점포 늘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영업 부진에 따른 손실은 죄다 점주에게 떠넘겨버리곤 망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거다. 지금 전국의 편의점이 4만 개가 넘는다니 1곳 잠재 소비자 수가 겨우 1200여 명 수준이 아닌가. 출혈 경쟁이 불을 보듯 빤한 거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편의점이 비 온 숲속의 버섯처럼 늘어날까.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먹고살 만한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퇴직금 몇 푼 쥐고 나온 사람들이 무얼 하겠나. 국민연금도 용돈 수준인 데다 지급 연령이 자꾸 뒤로 밀리는 판이다. 아파트 경비원 자리조차 많지 않은 세상이니 퇴직금 털어 넣고 은행 빚 얻어 식당이나 편의점을 열 수밖에. 그마저 말아먹고 빈털터리가 돼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름대로 품위 있는 생활을 누릴 정도의 연금을 받아 여행이나 다니는 유럽 나라 은퇴생활자의 생활 방식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게 우리네 사는 꼴이 아닌가.

정부도 고민이야 많을 거다. 다들 아시다시피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건 임금을 올리고, 복지지출을 늘리면 가계소득이 늘어나 다시 소비로 이어지며, 기업의 성장과 고용 촉진을 자극한다는 구도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실물경제에선 그런 ‘선순환’이 실현되고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물가가 그걸 잡아먹어 버린다. 돈은 퍼붓고 있는데 고용시장은 계속 한겨울이다. 기초노령연금을 한 10만 원 올린다는데 재정 부담이나 지울 뿐 경기 자극에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벌써 고개를 든다.

그래서 정반대의 해법을 들고나온 훈수꾼들이 출몰한다. 일부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케인스식 처방을 연일 때리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니 뭐니 하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니냐, 소득을 창출하고 고용을 늘리는 건 결국은 기업이라는 거다. 공정거래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뭐니 해서 그들을 죄고 비틀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그건 이명박·박근혜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소리가 아닌가. 그때라고 어디 고용 사정이 좋았나.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의 심화’가 아니었나. 정권과 기업이 부정하게 결탁하고, 경제권력이 문어발처럼 서민의 목줄을 죄던 때로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경제지표가 받쳐주질 않으니 정부도 당황해서 후진할 기미를 보인다. 대표적인 소득주도 성장론자로 알려진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을 내보내고 관료 출신인 윤종원 씨를 기용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러자 며칠 전엔 진보지식인 323명이 문재인 정권의 사회·경제 개혁 후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남북관계 개선, 정치적 적폐청산, 절차적 민주주의 복원 등은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유독 사회·경제 개혁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최근에는 크게 후퇴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거다. 그들은 “사회·경제 개혁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민심 이반과 개혁동력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주장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원조(?) 격이라 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경고음을 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말 우리나라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빨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제도 도입할 거 하고, 틀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 이런 말도 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데 이건 기본적인 복지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업 다니다 실직하고 나면 생계형 창업을 하다 보니,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본가가 된 거다. 동네 자영업자에게 재벌기업과 똑같이 최저임금 주라면 말이 되겠나.” 그는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략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한편 복지를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활용하라고도 조언했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재벌기업들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케인스주의와 하이에크주의의 절충론이라고나 할는지.

글쎄, 경제학자도 아닌 나는 무엇이 가장 적절한 처방인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라면 큰 틀에선 장하준의 주장에 고개가 끄떡거려지긴 한다. 파이도 키워야 하고, 그 파이를 골고루 나눌 제도적 장치도 만들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겠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만.

어쨌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기적인 지표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거시적인 청사진을 그려가며 그 단계에 걸맞은 중장기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내는 일일 터다. 대통령과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일이다. 경제는 현실이지만, 꿈이기도 하다. 경제를 실험실의 생쥐 다루듯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해선 세상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새벽 두어 시, 밀린 원고를 쓰다 담배가 떨어지면 나는 편의점으로 간다. 피로에 지친 청년 알바생의 노란 얼굴과 마주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취업이 안 돼 졸업을 유예한 내 아들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일을 준비하는 내 딸도 걱정이다. 그 애들이 어깨 펴는 세상, 쇠가 쇠를 먹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으련만. 무더운 날씨가 더 덥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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