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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지금 ‘복지국가 뉴딜’이 필요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9 19:01:0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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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가진 대담에서 한국은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라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하고 민망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녀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집단자살 사회’라는 짧은 말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본질적 차원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최근 20년 동안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2~3배나 높아졌고 출산율은 세계 최악의 초저출산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니 확실히 ‘집단자살 사회’가 맞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국민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와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게 국민이 불행한 나라가 맞다. 매년 실시되는 OECD의 ‘국민 행복도 조사’에선 거의 언제나 30등 전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유엔의 2018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선 57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불행할까?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절대적 빈곤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그런데도 왜 갈수록 더 불행해지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 사회적 공론화도 충분히 이루어졌다. 바로 상대적 빈곤과 격차 사회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산 격차는 미국과 함께 세계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소득 격차는 이미 미국을 앞질렀기 때문에 주요 국가 중 가장 심각하다. 해가 갈수록 상위와 하위 소득계층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간다. 이런 극심한 불평등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의 요인일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경제성장도 어렵게 한다. 또 수저계급론은 청년들이 말하는 ‘헬조선’의 본질이다. 청년들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고 행복과 불행이 결판난다. 게다가 각자도생의 생존 경쟁은 지나치게 치열하고 시장은 불공정하다. 정의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이 좌절하고 진취적 도전을 포기한다.

좌절하고 불행한 청년들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로 전락했다. 이게 바로 라가르드 총재가 말한 ‘집단자살’이다. 그렇다고 모든 청년이 ‘3포 세대’에 속한 건 아니다. 흙수저에 가까운 중하층 청년들이 주로 ‘3포 세대’를 형성한다. 이는 실증적 자료로 뒷받침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6년 펴낸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에 청년들의 ‘유전결혼 무전미혼’ 경향이 잘 드러난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20·30대 남성 노동자 중 기혼자의 비율은 임금 상위 10%에선 82.5%인 반면 하위 10%에선 6.9%에 불과했다. 또 국민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3분의 1 구간에 속한 분만 인원은 18만3227명으로 전체의 43.95%인데 비해 소득 하위 3분의 1 구간은 6만3282명으로 15.2%에 불과했다. 이는 수저계급과 소득계층에 따른 대규모의 ‘선별적 집단자살’인데, 격차 사회의 이런 자화상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한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 소득의 불평등, 시장과 경쟁의 불공정, 그리고 이로 인한 심각한 격차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갈수록 심화됐다. 이는 정치 사회적으로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특히 지난 대선 이전의 촛불혁명을 통해 불공정한 격차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또 드러난 문제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는 격차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고칠 수 없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패러다임 전환의 큰 개혁이 요구됐고, 결국 촛불혁명이 문재인 정부를 만들었다. 현 정부도 스스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음을 공언한다. 이제 구조를 바꾸려는 큰 개혁에 나서야 한다. 유럽 선진국들이 50년도 더 전에 갔던 길이고, 우리도 벌써 가야 했으나 지체되고 있는 길, 바로 복지국가의 길이다. 지금 서둘러 재촉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촛불시민의 뜻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국정 방향으로 설정했고, 이를 위한 전략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1년이 지났으나 성과는 미흡하고 최저임금 인상의 예측 가능한 부작용을 빌미로 반대자들의 비판과 저항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시민의 지지는 여전히 높지만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복지국가 건설의 패러다임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구축된 ‘헬조선’의 격차 사회가 그대로 고착되는 건 아닌지, 촛불시민의 불안감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올해 합계출산율은 1.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집단자살 사회’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복지국가 뉴딜’이 요구된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자리를 중심으로 경제체제와 복지체제가 유기적으로 조응하고 연계·통합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회수당을 확충하고 보육·교육·의료·요양 같은 사회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 복지는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등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중요한 일자리 정책이다. 다음으로 경제체제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체제의 재편이라는 두 가지의 큰 개혁 조치가 필요하다. 이게 성공하고 전제돼야 혁신적 경제 성장도 지속가능한 법이다.

복지체제와 경제체제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통합한 한국적 복지국가의 건설, 이게 바로 소득주도 성장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게 성공하려면 ‘복지국가 정당 정치’와 더불어 ‘깨어 있는 시민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즉, 정부·여당의 정치적 의지와 유능함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증세와 패러다임 전환에 동의하는 다수 국민의 복지국가 뉴딜(새로운 사회계약)이 요구되는 것이다.

제주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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